조금씩 자라나는 우리의 속 사람
누구든지 어떤 기반을 가지고
생각을 품고 행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기반이 대게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보여지는 것에 의존하는가 하면
무엇인가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있는 것들을
믿으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실존주의나 허무주의에서 시작하거나
종교를 가진 이들은 영적인 내면세계에서 시작한다
인간이 자라나면서 겪게되는 수 많은 경험은
인생 속에 파편화되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신에 대한 관념도 어느순간 사라져 버리면
사람들은 그 파편들을 먹고 살기도 한다
신의 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대부분
한 방향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다
신이 역사적인 무엇인가를 했으며
그에 대해서 반응하는 내가 변화된다라는 전제
그래서 내가 잘하면 복을 받고
잘 못하면 벌을 받는 다는 생각때문에
사람들은 인당수에 심청이를 빠뜨리고
호랑이에게 곶감을 주었다고 할까
토속신앙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서사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능을 가지기에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파편화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비인격저이고 무서우며
심술이 많고 욕심이 많은 것이다
인간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때로는 비를 내리고
굽어 살피는 듯 정의롭다가 어느순간에는
사람들을 몰살시켜버리기도 하는.
찬란한 도깨비신은 그래도 양반이다만은.
내가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한참 자아정체감이 자라나는 시기에
나는 사는게 무서워지고, 발 디딜 곳이 업었다
그래서 무서운 것들
투성이 사회에서
기존의 신의 대한 관념에서는
도저히 안정이 안되어
불교도 가보고 점도 쳐보고
비나이나'도 해보았으나
죽음이라는 것이 실존한다는 것
가까이에서 나를 누른 다는 것과
죄라는 것이 어느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비바람 속에 번개에서 두려워하고
다가오는 차들 속 생명이 위태로워지고도 했다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버리는 차가운 분이었고
그럼에도 가까스로 알게된 예수님이란 존재는
그래도 조금은 착한 것 같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 차디찬 방바닥에
잘 덮히지도 않는 이불을 깔고서는
'예수님 생일 축하드려요'라고 했던
우울한 내 자신이 생각나기도 한다
하는 말은 언제나 한말을 뒤집는다
현재는 언제나 과거를 덮어씌운다
나는 지금 느끼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그 분이 다스리는 현실에 대해서
언제나 하는 말로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사랑을 동원하지 않고 해결되지 않기에
기승전 사랑'으로 표현하는게 아니라
진짜 날마다 사랑을 경험하기에
나는 말할 수 밖에 없다
조금씩 조금씩 사랑이 내 살깣을 덮고
심장까지 파고 들어 내 존재를 바꾸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존재인데 말이다
사랑이 만들어내는 인격의 향기가
타고르가 말하는 나무의 꽃인데 말이다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은 부활하셨다
그래서 나도 부활했다
부활은 언제나 현재적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항상 현재형으로 삶을 느낀다
그리고 호흡할 때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이 나의 본질을 만드셨다
생각하지 않은 순간에도
여전히 그의 사랑과 배려는 나를 감싸 안는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폐 가득히 쌓여 있는 사랑으로
눈물이 흐르고 감사가 넘친다
언제나 그랬다
삶을 낭만화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보면
오히려 골리앗 앞의 다윗처럼
더욱 선명히, 더욱 확실하게
나에게 말씀하신다
'경인아 내가 사랑한다'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들어 하니?'
'나랑 같이 갈래?'
'너무 좋겠다!'
살아있는 생명에게서만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
영원히 사랑하신다면
나의 인격은 날마다 사랑으로
꽃을 피우지 않겠는가
우리는 언제 꽃이었던가
아름다움이 맺혀 있는 인생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