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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스피노자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스피노자 철학의 근본 개념들_자연과 속성

by 낭만민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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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투라라는 자연 또는 본성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또한 아이테르니타스라는 스피노자에게서 '영원성'의 개념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속성'의 개념을 볼 것이다. 스피노자가 생각한 자연은 신의 속성을 나눠갖고 각기 다른방식으로 보여주는 양태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신의 속성인 '영원성'이 모든 것에 담겨 있다. 물론 이런 개념은 추후에 범신론이나 범재신론으로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신이다라는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스피노자가 살아간 중세시대를 이제 막 벗어난 계몽주의 시대에서 '이신론'이라고 하는 신과 자연을 분리해내는 작업을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속살을 발라내듯이 신의 속성을 각각의 양태에 부여하고 이제 그것을 부여한 신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니체는 드디어 신의 현존을 발라냈고, 이어서 들뢰즈는 완전하게 신과 상관없는 무의식의 자연개념을 시작점까지 만들어 놓았다. 다시 스피노자로 들어가보자.


스피노자의 이해, 자연과 속성



아이테르니타스, 영원성

스피노자의 작품에서 '영원성'과 그것에 상응하는 네덜란드어 eeuwigheid는 주로 신과 관련이 있다.영원성은 편지 12'와 형이상학적 사유' 1.4와 2.1 및 윤리학' 1부에서 논의된다. 이 개념은 실체와 그 속성을 한정하는데to qualify 사용된다. 윤리학' 1부의 정의 8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오직 영원한 실재의 정의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는 것으로 인식되는 한에서의 실존 그 자체를 영원으로 파악한다' 이 정의는 다소 수수께끼 같은데,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영원성을 너무 일반적인 것처럼 보이는 실존과 동일시하는 것 같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실재'를 언급함으로써 정의가 순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정의는 영원성은 '지속은 시작과 끝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더라도 지속이나 시간으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명시하는 아래 해명과 결합하여 읽어야 한다.

스피노자는 여기 '윤리학'에서는 함축적으로 그리고 '형이상학적 사유' 1.3에서는 보다 명시적으로 '영혼에 대한' 전통적인 주요 정의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첫번째로 영혼을 무제한적이거나 무한한 지속과 동일시하는 저으이가 그것이다. 이는 예컨대 홉스가 고수했던, 또는 데카르트처럼 영원성을 끝없는 삶의 전체적이고 동시에 완전한 소유라고 보는 보에티우스적 관념을 공유했던 모든 이들이 고수했던 것이다. 두번째로 영원성은 모든 시간과 지속이 아닌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정의되었다. 영원성과 달리 시간의 독특한 특성은 측정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속과 더불어 이 특성은 더욱 복장해진다. 종종 주석가들은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세계와 비교하여 지속적이고 필연적인 세계를 정초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데, 이는 스피노자주의를 플라톤화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단 하나의 우주만 인정했으며, 그가 지속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항상 특수한 실재의 지속이다.사실 스피노자는 모든 실재를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종종 필연성과 영원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윤리학' 1부 정리 10의 주석이 그렇다. 그러나 그는 더 자주 자연법칙에 따른 필연성을 인정하면서 영원성은 내적 이유, 근거 또는 원인에 의한 필연성과 같은 것이고 which for the rest implies a kind of perpetuity.




영원성, 인간

두번째로 영원성은 인간과 관련된다. 물론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지만 실재에 대한 그의 견해는 영원성이라는 개념으로 그 특징을 나타낼 수 있다. 이는 이성의 특징으로, 이성은 실재를 어떤 영원의 관점에서 기각할 수 있다. 어떤 주석가들은 스페치에specie를 논리적인 스페치에로 해석하는데, 그것은 다른 유의 영원성, 곧 고유하고 절대적인 의미의 영원성과 덜 완전하고 그것의 취약한 소산인 인간적인 영원성이 실존한다는 것을 함축할 것이다.

분명 이러한 해석은 스피노자에 대한 기독교적 독해에 기인하는 것이다.다른 주석가들은 스페치에를 관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또는 정신에 의해 인식된 형상이라고 해석하는 동향ㅇ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영원성은 인간의 정신과 상관적이지 않거나 실재들 간의 필연적 관계를 지각하는인간의 능력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 인간이 이러한 필연성의 양상을 띄는 한에서 인간이나 인간의 일부 변형하는 것은 영원성 자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 우리가 영원성을 정신의 지속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영원성을 불멸성로 오해하는 것이다.



국가, 영원성

세 번째로 국가의 영원성과 국가의 역량 및 국가의 존속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취해진 법령을 나타내면서 형용사 '영원한'이 '정치론'에 등장하게 된다. 그 구절은 퀸투스 쿠르티오스Quintus Curtius가 알렉산더 대왕의 것이라고 간주하는 연설을 각색한 것이지만, 이 관념은 스피노자의 체계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국가는 내적 필연성에 의해 굴복되지 않는 국가이다. 대부분 국가의 실조닝 다른 나라보다 그 국가의 시민에 의해 더 위협을 받기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신학정치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비판에서 부터 스피노자는 시작한다


나투라, 자연과 본성

스피노자의 저작에서 '자연, 본성'과 그것에 상응하는 네덜안드어 natruur와 aard는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 개념을 전혀 정의하지 않는다. 스피노자가 '소론'에서도 그리고 윤리학 1부에서도 다루고 있는 나투라 나투란스natura natuans(능산적 자연)과 나투라 나투란타natura naturata(소산적 자연)이라는 스콜라 철학의 개념쌍 외에도, 스피노자가 이 개념의 전통적인 의미 역시 받아들인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 본성'의 첫 번째 의미는 아주 고전적인 것으로 실재의 특성과 대비되는 실재의 본질을 나타낸다.

신, 인간, 삼각형 등의 본성이 이에 해당된다. 실재의 본질과 구조, 바탕fabric을 나타내는 이 본성'이라는 용어의 이점은 본질과 비교할 때 그것이 논리적인 함축connotations를 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명확한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실재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관련되기도 한다. 기하학자는 삼각형의 본성과 그것의 특성을 연구하는데, 이는 어떤 도형이 삼각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떻게 삼각형의 본성에서 특정한 특성들이 따라나오는지, 또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정신화한다면 어떻게 특정한 특성들이 어떤 실재에 있는 것이 불가능한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탐구는 '비웃거나 슬퍼하거나 저주'하지 않는 대상을 내정하게 바라보는 태도와 목적인을 거부하는 것을 함축한다. 본성과 그 특성에 대한 검토는 그 목적ㅇ과 이상적 본질에 대한 숙고와 반대된다.그러한 명목 하에 어떤 것은 그 자신의 목적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매도되고, 그것을 결함이 있거나 악한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윤리학'과 스피노자의 편지는 종종 대문자로 '본성'을 사용한다.




나투라, 실재

두번째 의미도 첫 번째 의미처럼 고전적인 것인데, 실존하는 모든 실재들 전체르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로 나투라 레룸natura rerum이라는 표현 또한 사용된다.

이 전체는 내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인도하기 위해 외부의 권능(자연의 지배자)이 필요하다고 상상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법칙 전체는 전통적으로 신이라 불린 원리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이는 '신 즉 자연'이라는 구절의 등장을 정당화 한다), 삼각형이 그것의 어떤 특성과 동일시 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자연Natrure의 어떤한 부분과도 동일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나투라 나투란스(신-실체와 속성)와 나투라 나투라타(실재들) 간의 스콜라 철학적 구별을 사용함으로써 그 차이를 표시한다.



스피노자, 신

스피노자 사상의 독창성은 신을 자연, 본성으로 환원한 것에 있지 않고 자연, 본성의 법칙이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있다. 자연의 질서를 위반하는 기적이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이러한 불변성, 항구성constancy이다.인간을 자연법칙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자연의 일부'로 만드는 것도 이러한 보편성이다.

인간 본성에 적용되는 특정한 법칙은 단순히 연장과 사유의 일반 법칙이 특수한 영역에 적용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의 특징 역시 그것들의 불변성과 그것들의 통일성에 의해 드러난다.심리학적 수준에서 말하자면, 정념은 악덕이 아니라 단지 자연 법칙이 인간 본성에 필연적으로 적용된 것일 뿐이다. 정념을 무시하는 인들은 정념의 훨씬 더 심각한 희생양이 된다.

정치적 수준에서, 사회 계약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의 필연적 법칙을 파괴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 법칙을 감안하는 제도institution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궁극적으로 인간들 간에 그리고 국가'자연은 인간을 만들지 않는 다' 간에도 개인들'귀족들도 그들이 경멸했던 다중들처럼 동일한 감정적 삶을 살아간다' 간에도 근본적 차이는 없다.

자연, 초자연

이러한 상황에서 초자연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우리의 자연적 인식과 다른 범주의 인식이 실존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자연은 어떠한 것도 배제하지 않지만 우리는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거나 이해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초자연적인 것은 단지 마땅한 질서debito ordine안에서 포착되지 않는 자연일 뿐이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 예컨대 신체와 상상에 기인하는 결과들에 의해 산출된다는 의미에서 초자연적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 바깥에 실존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실재, 법칙

모든 실재가 자연 법칙을 따른다면, 어떻게 도덕성이 근거를 가질 수 있는가?이성은 자연, 본성에 반하는 어떤 것을 요구하지 않지만, 가능한 인간 활동들-모두 똑같이 자연적인-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데, 이는 신체의 더 나은 평행 상태와 다른 사람과의 더 나은 관계와의 다방면의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목적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상상적 목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연적 역량에 대한 최선의 인식과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그의 법칙에 근거한 인간 본성의 모범을 이해할 이해해야 한다.



스피노자, 3종 인식

1종의 인식은 상상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상상하고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이것을 거짓이라고 말했다.

2종은 과학적 실재를 구성하는 이성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성적인 사고가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생각으로 사실과 가치를 연결하듯이 사물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인식이다.

3종은 신의 속성에 속하는 인식이다. 신의 속성에 속하는 인식은 신의 본성을 통해서 발생학적으로 형상화되었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신으로부터 출발해서 사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신의 속성이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신으로부터 실재를 이해하는 방식의 인식을 '3종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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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실체를 고유한 속성과 동일시하는 데카르트의 개념을 대체한다. 그 결과 데카르트는 연장 속성을 갖는 연장 실체와 사유 속성을 갖는 사유 실체 같은 유한 실체 개념을 주장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윤리학 1부 정의 4에서 '나는 실체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지성이 지각하는 것을 속성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윤리학 2부에서는 '나는 어떤 실재의 본질에 그 본질이 주어지면 그 실재가 필연적으로 정립되고 그 본질이 제거되면 그 실재도 필연적으로 제거되는 것이 속한다고,또는 그 본질 없이는 그 실재가 역으로 그 실재가 없으면 그 본질이 존재할 수도 인식될 수도 없는 것이 속한다고 말한다.'



스피노자, 민네이션

스피노자에게서 비합리성의 근본적인 전형을 본다. 그것은 신의 속성에서 사물의 이치를 끌어내는 것 뿐 아니라, 사물의 형상까지도 신의 속성인 3종적 인식에서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발생학'에서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형질 전환이 일어나기 전에 같은 속성에서 생명은 시작되어서, 새로운 개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속성에서 여러가지 속성들이 분할되면서 개체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인간은 영원불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 영원성을 가지고 있는 속성이 실재화된 본성은 영원성의 옷을 입는다고 볼 수 있다. 한 개인의 독특한 인격 안에서 만들어진 실체가 살아온 역사는 영원할 수 없으나, 개인의 삶 속에서 영원한 실체들은 마찬가지의 영원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실체와 속성, 양태의 개념은 들뢰즈를 통해서 사회구성이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민네이션, 생각

스피노자에서 지속성이라는 개념이 나오고 이러한 개념을 받아서 베르그송이, 다시 들뢰즈가 이어 받는다. 신의 속성이 발생학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이후의 철학자들이 지속적으로 밟아가면서 여러가지 철학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역시 비합리적 사고의 전형으로 '목적론적 사고'를 배격한다. 어떤 인간과 인격을 목적이라는 프레임으로 규정하는 순간 인간은 여전히 속성을 가진 개체이지만 그것을 개체로 묶어내는 속성을 함몰 시킨다는 것이다.

모범이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들은 목적설정 때문에 오히려 존재이면서도 존재가 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볼 때 범신론적인 입장에서 모든 사물은 신의 속성과 형상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은 목적론적인 속성들의 선택으로 개체로 나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모든 실체들은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하는 차이나는 것들이라고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아서 주장하게 된다. 차이는 오직 있음과 있음 사이에서 드러나는 것이 정상과 비정상,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존재욕구인 코나투스 개념도 탄생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있다면 있는 그 상태로 긍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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