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나에게도 후배다운 후배가 생겼다.
00년생 신입사원이었다. 내 인생 첫 '진짜 후배'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꼰대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회사 내에 20대가 사라지고 있다.
IMF 이후로 급감한 출산율과 2000년대 이후로 쭉 이어진 저출산의 여파가
이제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시간이 도래하고야 말았다.
한 명 한 명 귀하게 자란 세대가 사회에 진출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 30대에 접어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는 늘 막내였다.
90년대 중반 출생자이면서 경력은 10년이 되어갔지만 이상하게도 난 여전히 막내였다.
그동안에는 '후배'라고 부르기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나보다 경력은 짧지만 나이나 직급이 높은 사람.
혹은 나이는 어리지만 직급이 같거나 성별이 달라 선후배 구도가 애매해지는 순간들.
그러다 정말로 확실한 후배가 생겼다.
처음 맞는 후배이자, 00년생 신입사원
나는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느꼈다.
내가 일을 배웠을 때와 지금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던져지고, 내쳐진 다음에야 벼랑 끝에 몰려서야 겨우 배우는 업무들
알아서 하면 왜 안 물어보냐고 혼나고,
물어보고 하면 아직도 이런 걸 모르냐고 핀잔 듣던 시절.
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는 싫었다.
기나긴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오은영 선생님의 '마음 읽기'를 해보자.
최대한 상처받지 않는 첫 회사생활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자였다.
"지수 바쁘니?"
"지수 이 일 좀 해볼까?"
"지수 너무 잘했어, 근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쉬운 업무부터 맡기고 익숙해질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내 판단이 오만이었을까.
그 결과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사무실을 가득 채우는 지수의 하품소리. 지수는 한 시간에 네다섯 번은 족히 되는
'하-암' 소리가 들릴 정도의 하품.
지수는 거의 매일 아침 2,3분씩 지각을 했다. 총무 과장이 나서 늦지 말라고 했지만 그 이후에도 지수의 지각은 계속되었다. 결국 총무 과장이 큰 소리로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지수는 퇴근하기 3분 전 외투를 입었다. 6시가 되자마자 회사 문을 나서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그 외에도 그녀의 다양한 행적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1. 탕비실 소확횡
지수는 몇 달째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틀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사가 대신 처리해 주었지만 그녀도 이제 지쳤는지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 했다. 왜 틀렸는지 어디가 잘못됐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지수는 그날 혼자 남아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지수는 화가 많이 나있었다.
퇴근 전, 탕비실에 비치되어 있는 과자들을 전부 챙겨 갔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2. 제가 다 가져도 돼요?
내가 맡고 있는 거래처에서 귤을 선물로 보내왔다.
팀원들끼리 조금씩 나눠 갖기로 하고 귤을 소분하고 있었고, 지수에게도 물었다.
"지수야 귤 가져갈래?"
"네. 이거 다 가져가도 돼요?"
천진난만하게 웃는 지수의 얼굴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
"나눠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지수의 몫을 챙겨주었다.
3. 저에게 이 일을 던지시다니 너무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수는 이 업계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했다고 했다.
그제야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수를 가르쳐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비슷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업무를 직접 해보라 말했다.
근데 잠시 후에 지수에게 온 메신저
"저한테 이 업체를 던지시다니 너무해요!"
난 이 문장을 어떤 맥락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잦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업무를 지시했고, 명령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같은 실수를 또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연습시켰을 뿐이다.
4.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연말이 되고 종무식과 시무식 시즌이 돌아왔다.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회사이지만 단합하기 위해 식당을 예약하기로 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는 질문이 오고 갔다.
"지수는 뭐 먹고 싶니?"
"전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황당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나 또한 필터링 없는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그게 무슨 대답이야?"
MZ세대를 정면으로 마주하니,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어딜 가도 막내였고 막내노릇에 익숙했다.
그래서 후배가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막내로 살면 허리를 굽히고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를 해주며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 그만이었다. 선배가 되고 나니 '만만하게 보이지 않아야 한다.'라는 새로운 퀘스트까지 추가되었다.
12년 전 내가 막내노릇을 하던 때처럼 군기가 빠짝 들어있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26-27살이었을 때처럼 과거 기록을 뒤져가며 업무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각하지 않는 것, 한 번쯤 생각을 해보고 대답을 하는 것. 그 정도의 품행을 바랄 뿐이다.
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다만 회사는 학교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