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싫어하는 사람이 떡볶이 먹으러 가는 가게
*겨울 막바지에 제작한 독립 출판물 '을지로 야옹이'를 매주 브런치에 소개합니다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이
떡볶이 먹으러 가는 가게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내가 여자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떡볶이 때문이다.
떡볶이 콘텐츠의 대부분에 ‘떡볶이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는 멘트가 따라붙는다.
아니, 난 떡볶이를 싫어해.
특별히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가리는 음식이 아주 많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어떤 음식을, 왜 싫어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남들이 다(아마 대부분) 좋아하는 음식을 싫어한다고 말했을 때 따르는 ‘왜?’라는 질문에 꼭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를 말하면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고, 또 답하지 않으면 편식하는 거라고 훈수를 두는 탓에 맛있는 말로 받아치는 능력을 키웠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1. 곱창
“아니 곱창을 왜 안 먹어요?”
“살 먹기도 바쁜데 내장 먹을 시간이 어딨어요!”
비슷한 음식으로는 닭발이 있다.
2. 닭 다리
“닭 다리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어요?”
“전 닭가슴살이 좋아요”
“다이어트 해요?”
“다이어트 하는 거면 지금 이 술자리에 있겠어요?”
닭 다리를 차지하게 된 게 기쁘면 그냥 좋다고 말해!
3. 회
“술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회를 못 먹다니.
진정한 술꾼이 아니구먼.”
“그러게요~ 회만 먹을 줄 알았으면
맨날 네 발로 기어다녔을 텐데 아쉽네요.”
아, 비린 걸 못 먹어서 회를 싫어한다고 답하면 이렇게들 말한다.
“초장 많이 찍어서 먹으면 하나도 안 비려. 먹어봐!””
“그럼 초장 먹지 왜 회 먹어요..”
생선을 싫어할 뿐 해산물을 다 싫어하는 건 아니다.
먹는 해산물도 있는데,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서 ‘다리 네 개 이상인 것’만 먹는다고 말한다.
낙지나 오징어, 새우 같은 것.
내가 다리 네 개 이상인 것만 먹는다고 하면 꼭 지네를 꼽는 귀엽고 유치한 사람들이 있다.
그럼 난 너님이 먹을 수 있는 것 안에서 생각하라고 답한다.
떡볶이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쨌든 나는 여자들의 소울 푸드인 떡볶이를 싫어한다.
곱창은 징그러워서, 닭 다리는 닭 냄새가 싫어서, 회는 비린 데다가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라서 안 먹는데, 떡볶이가 싫은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더라.
특히 떡볶이 속에 있는 어묵과 대파, 라면 사리를 좋아하고,
즉석떡볶이 국물에 밥 볶아 먹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아! 나는 떡볶이에 있는 떡을 싫어하는 거구나.
엥, 난 떡을 좋아하는 걸.
어릴 적 떡을 하도 잘 먹어서 엄마가 ‘떡보 바보’라고 놀렸다.
이쯤 되면 ‘그냥’ 싫어하는 거라고 볼 수밖에.
내가 떡볶이 속 떡을 싫어하는 이유의 비밀은 마파두부를 왜 싫어하는지 생각하면서 밝혀졌다.
포슬포슬한 고기에 매콤한 고추기름이라는, 최고의 조합인 마파두부를 나는 왜 싫어하는지 고민했는데, 그건 바로 속까지 양념이 안 된 두부 때문이었다.
입안에서 강한 소스와 순둥한 두부가 천천히 섞이는 찰나를 참지 못했던 것이다.
떡볶이 속 떡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이런 ‘떡볶이 헤이러(hater)’를 사로잡은 떡볶이가 있었으니, 바로 을지로 ‘미팅룸’의 떡볶이다.
속까지 간이 된 떡볶이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을지로 미팅룸의 떡볶이는 떡 속에 치즈가 들어있는 일체형 ‘치즈 떡’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소스와 떡이 따로 논다는 생각이 덜 든다.
어릴 적에 엄마가 가끔 치즈 떡으로 떡볶이를 해줬는데, 집 밖에서 살게 되니 그 ‘치즈 떡’으로 만든 떡볶이를 먹기 힘들었다.
그런데 외간 남자가 만든 ‘미팅룸’ 떡볶이에서 엄마가 생각났다.
달지 않고 살짝 매콤한 맛까지 딱 엄마 떡볶이 맛이다.
엄마는 쫄면 사리도 우동 사리도 아닌 늘 라면 사리만 넣어 줬는데, 여긴 납작 당면 사리가 들어간다.
라면 사리보다 더 짭조름한 게 완전 내 스타일이다.
사실 을지로 ‘미팅룸’의 메인 메뉴는 구름 같은 머랭 위에 익히지 않은 노른자를 올린 ‘구름 파스타’이다.
비주얼도 훌륭한데 맛도 깊다.
떡볶이는 사이드 메뉴 급.
파스타도 맛있지만, 난 이 떡볶이가 좋아서 ‘미팅룸’엘 간다.
‘엄마 떡볶이 느낌이라서’는 둘째 이유고, 진짜 이유는
이 떡볶이와 레드 와인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미팅룸
골뱅이 골목에서 동경 우동 있는 좁은 골목으로 꺾어
막다른 골목 까지 걷다 보면
정면에 보이는 닭한마리 가게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