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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민희 Oct 25. 2018

#6. 미팅룸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이 떡볶이 먹으러 가는 가게

*겨울 막바지에 제작한 독립 출판물 '을지로 야옹이'를 매주 브런치에 소개합니다


#6. 미팅룸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이
떡볶이 먹으러 가는 가게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내가 여자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떡볶이 때문이다. 


떡볶이 콘텐츠의 대부분에 ‘떡볶이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는 멘트가 따라붙는다. 

아니, 난 떡볶이를 싫어해.


특별히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가리는 음식이 아주 많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어떤 음식을, 왜 싫어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남들이 다(아마 대부분) 좋아하는 음식을 싫어한다고 말했을 때 따르는 ‘왜?’라는 질문에 꼭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를 말하면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고, 또 답하지 않으면 편식하는 거라고 훈수를 두는 탓에 맛있는 말로 받아치는 능력을 키웠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1. 곱창

“아니 곱창을 왜 안 먹어요?”

“살 먹기도 바쁜데 내장 먹을 시간이 어딨어요!”

비슷한 음식으로는 닭발이 있다.


2. 닭 다리

“닭 다리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어요?”

“전 닭가슴살이 좋아요”

“다이어트 해요?”

“다이어트 하는 거면 지금 이 술자리에 있겠어요?”

닭 다리를 차지하게 된 게 기쁘면 그냥 좋다고 말해!


3. 회

“술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회를 못 먹다니. 

 진정한 술꾼이 아니구먼.”

“그러게요~ 회만 먹을 줄 알았으면 

 맨날 네 발로 기어다녔을 텐데 아쉽네요.”


아, 비린 걸 못 먹어서 회를 싫어한다고 답하면 이렇게들 말한다.

“초장 많이 찍어서 먹으면 하나도 안 비려. 먹어봐!””

“그럼 초장 먹지 왜 회 먹어요..”

생선을 싫어할 뿐 해산물을 다 싫어하는 건 아니다. 

먹는 해산물도 있는데,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서 ‘다리 네 개 이상인 것’만 먹는다고 말한다. 

낙지나 오징어, 새우 같은 것. 


내가 다리 네 개 이상인 것만 먹는다고 하면 꼭 지네를 꼽는 귀엽고 유치한 사람들이 있다. 

그럼 난 너님이 먹을 수 있는 것 안에서 생각하라고 답한다.



떡볶이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쨌든 나는 여자들의 소울 푸드인 떡볶이를 싫어한다. 

곱창은 징그러워서, 닭 다리는 닭 냄새가 싫어서, 회는 비린 데다가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라서 안 먹는데, 떡볶이가 싫은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더라. 


특히 떡볶이 속에 있는 어묵과 대파, 라면 사리를 좋아하고, 

즉석떡볶이 국물에 밥 볶아 먹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아! 나는 떡볶이에 있는 떡을 싫어하는 거구나. 


엥, 난 떡을 좋아하는 걸.

어릴 적 떡을 하도 잘 먹어서 엄마가 ‘떡보 바보’라고 놀렸다. 

이쯤 되면 ‘그냥’ 싫어하는 거라고 볼 수밖에.


내가 떡볶이 속 떡을 싫어하는 이유의 비밀은 마파두부를 왜 싫어하는지 생각하면서 밝혀졌다. 

포슬포슬한 고기에 매콤한 고추기름이라는, 최고의 조합인 마파두부를 나는 왜 싫어하는지 고민했는데, 그건 바로 속까지 양념이 안 된 두부 때문이었다. 

입안에서 강한 소스와 순둥한 두부가 천천히 섞이는 찰나를 참지 못했던 것이다. 


떡볶이 속 떡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다른 각도에서 찍은 을지로 미팅룸의 떡볶이(영롱)

이런 ‘떡볶이 헤이러(hater)’를 사로잡은 떡볶이가 있었으니, 바로 을지로 ‘미팅룸’의 떡볶이다. 

속까지 간이 된 떡볶이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을지로 미팅룸의 떡볶이는 떡 속에 치즈가 들어있는 일체형 ‘치즈 떡’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소스와 떡이 따로 논다는 생각이 덜 든다. 


어릴 적에 엄마가 가끔 치즈 떡으로 떡볶이를 해줬는데, 집 밖에서 살게 되니 그 ‘치즈 떡’으로 만든 떡볶이를 먹기 힘들었다. 

그런데 외간 남자가 만든 ‘미팅룸’ 떡볶이에서 엄마가 생각났다. 


달지 않고 살짝 매콤한 맛까지 딱 엄마 떡볶이 맛이다. 


엄마는 쫄면 사리도 우동 사리도 아닌 늘 라면 사리만 넣어 줬는데, 여긴 납작 당면 사리가 들어간다. 

라면 사리보다 더 짭조름한 게 완전 내 스타일이다.


몽글몽글 귀여운 구름 파스타!

사실 을지로 ‘미팅룸’의 메인 메뉴는 구름 같은 머랭 위에 익히지 않은 노른자를 올린 ‘구름 파스타’이다. 

비주얼도 훌륭한데 맛도 깊다. 

떡볶이는 사이드 메뉴 급. 


파스타도 맛있지만, 난 이 떡볶이가 좋아서 ‘미팅룸’엘 간다. 

‘엄마 떡볶이 느낌이라서’는 둘째 이유고, 진짜 이유는 

이 떡볶이와 레드 와인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미팅룸

골뱅이 골목에서 동경 우동 있는 좁은 골목으로 꺾어

막다른 골목 까지 걷다 보면 

정면에 보이는 닭한마리 가게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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