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 녹아 들어있는 우리 내 정서, 정.
요즘 내가 좋아하는 고두심의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 속 주인공 엄마 임산옥은 동네 골목길 모퉁이에서 조그마한 반찬가게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그녀의 오랜 친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운털 잔뜩 박힌 친구 유자가 찾아온다. 자신을 위해 특별히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값은 20%나 더 처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여지는 조건은 그녀가 만든 '임산옥'의 반찬이 아닌 '유자가 만든' 것으로 해 달는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그런 상황을 보다 못 한 그녀는 친구의 면전에 말한다.
"유자야, 내가 우리 반찬을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서비스를 팍! 팍! 주는 사람이야.
열무 300그램 사면서 너~무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매실 장아찌 50그램을 서비스로 주는 사람이야, 내가. 왜?!
이 반찬에 대해서 장인 정신이 있으니까, 나는.
그런데 내가 만든 작품을 내가 만든 게 아닌 걸로 해서 세상에 내 보내는 건,
억만금을 준대도 원치 않아, 나는.
고로 이거 못 만들어줘."
그녀는 그녀가 만드는 반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렇지만 이 대목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녀의 자부심도 아니요, 인정 없는 친구에게 악플을 날리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녀가 보여주는 우리 정서에서 때려야 땔 수 없는 '정'이다.
정.
우리나라 정서에 녹아들어 있는, 현대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사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정이다. 예전 90년대 초,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나는 엄마를 대신해 동네 시장에 콩나물과 두부를 사러 자주 갔다. 물론 나에게는 용돈이라는 소정의 이윤이 있는 '심부름'이라는 것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시장 골몰에만 들어서면 시장 가게 아주머니들은 '엄마를 잘 도와주는 효녀'라는 부담스러운 이름으로 나를 항상 불러주시며 예뻐해 주셨다. 그러고는 기특하다며 '덤'으로 한 주먹 더 되는 콩나물을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 주시곤 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정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내가 자라면서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일들과 직업들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레 정을 많이 주고받았다. 내 능력하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대한 도우며 지냈던 것이 나와 함께하는 이들에게 내가 나눌 수 있는 나만의 스타일의 '정'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타인에게서 내가 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정을 받으면서 감사하게 지내왔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동양의, 특히나 한국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서구형 사회다. 멜벌이라는 다민족의 문화가 잘 섞여있는 곳이다. 아무리 아시아 인들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정의 정서보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서구형 사고 방식의 사회다. 그래서 가끔 이들은 내가 나누는 정에 대해 왜 그러는지 의아해 한다. 어떤 이들은 불편해하기도 한다. 계산적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나의 정이 '다시 되갚아야 하는 그 어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직접적으로 물어본다. '너 왜 그렇게 도와줘?'. 이들에게는 내가 나누는 정이 필요 이상의 아무 의미 없는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도 난 정이 좋다. 물론 과한 정으로 인해 타인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건 주지 않는 것 만 못하다. 그럴 경우에는 현명하게 멈추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우리가 사는 너무 노골적으로 합리화되어있는 이런 현대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나눌 수 있는 정은 인간이라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초자연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정이란 없다. 세렝게티의 배고픈 사자들이 어린 초식 동물이 불쌍하다 여겨 정을 베풀어 살려 주는 행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컴퓨터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해 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프로그래밍된 로봇 기기들에게 넘겨주는 추세다. 그런 로봇들에게서는 인간에서 느낄 수 있는 정은 아직까지 찾아 보기 힘들다; 맷 데이먼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엘리시움'에 등장하는 경찰 로봇이나 정부 청사 민원실에 등장하는 플라스틱 사람 모형에 컴퓨터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인간의 정이 얼마나 값지고 우리 삶에서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혹 미래에는 인간의 감정과 판단력을 200%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상용화된다면 모를 일이지만 아직은 이니다.)
정은 사회적 동물인 우리들에게 있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하고, 있던 불면증이나 우울증도 달아나게 하고, 흉악한 범죄율도 낮추거나 사라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에게, 나의 편의와 이윤을 먼저 고려하는 개인적인 사회가 아닌 타인과 함께 잘 살아 갈 수 있는 정이 있는 이타적인 사회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와 가족, 친구들과 동네 어른들, 그리고 그런 깊은 뜻이 담신 정신을 남겨주신 선조들께 감사하다. 우리의 따뜻한 정이 담긴 문화를 통해 요즘들어 자주 만날 수 있는 과학 판타지 영화에 등장하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만들어지는 비극적인 결말에 비치는 인류의 종말에 있어서도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Epilogue -
부탁해요 엄마에 관한 사진 자료를 찾던 중 케이비에스 웹사이트 드라마 코너 '부탁해요 엄마' 페이지에 들어가면 기가 막힌 임산옥의 요리 레시피들이 올라와있다. 재료에 대한 설명과 요리를 하는 것에 대한 설명도 잘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떡과 반찬들을 전부 만들어 보고 싶다.
http://www.kbs.co.kr/drama/mymom/cook/recipe/index.html
By Minnie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