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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선경 Feb 07. 2021

옛날 육아일기

 탄생 (아기의, 그리고 동시에 엄마의)  

(20여년 전의 내 육아일기 이제야 연재한다) 


12월 24일 토요일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흠칫 놀라며 깨어나서는 한동안 여기가 어디지 싶게 멍했다.

낯선 방. 낯선 침대, 낯선.... 분위기. 

병원이었다. 천정에 까만 네발과 네 귀를 가진 흰 강아지 네 마리가 매달려있었다. 아기 낳은  선물로 남편이 입원실에 매달아둔 모빌이었다. 가운데 늘어뜨려져 있는 빨간 색 하트를 누르면 맑은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저게 뭐지? 아, 아기 모빌이구나...그래,.... 아기 낳았지 그래, 아기 낳았어. 아, 다행이야. 아기 무사히 낳았구나. ’


왈칵 아까의 통증이 다시 되살아나며 무서워졌다. 

생상하게 기억나는 통증. 그리고 온 몸을 적셨던 땀과 바닥에 흥건했던 피.... 

사람이 피를 그렇게 많이 쏟고도 죽지 않는구나. 신기할 따름이다. 보통 아주 어려운 일을 했을 때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들 하는데 아이를 낳아보니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겠다. 정말로 한 말은 될 피와 두 말은 될 땀을 쏟아내고 난 후에야 애기가 나왔다. 아기를 낳을 때만큼만 피와 땀을 쏟아낸다면 세상에 못할 일이 뭐가 있으랴. 

몇 시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나는 ‘엄마’ 가 되었다. 


내가 잠든 틈에 다들 식사라도 하러 나갔는지 방은 비어있었다. 

배가 아프다. 사람들 말로는 자연분만하면 아기 낳자마자 바로 아무렇지도 않다는데 나는 여전히 배가 아프다.  

예전의 애기 엄마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사람들은 저녁밥 지으려고 아궁이에 불 때다가 산통이 와서 방에 들어가서 아이 낳고, 그리고는 곧 다시 나와서 짓던 저녁밥을 마저 지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돌기도 하는데. 그런데 나는 아직도 배가 어찌나 아픈지 배속에 애가 하나 또 들었나 싶기도 했다. 

마침 간호사가 들어왔다. 

“소변 보셨어요? ” 

“아니요. 근데요 배가 너무 아파요. ” 

“후산통이라구요, 자궁이 수축하느라고 그래요. ” 

아니, 이놈의 자궁은  도대체 언제까지 그 수축이라는 걸 할건지. 애기 낳을 때도 계속 수축이라는 걸 했었는데. 줄어든다는 뜻의 ‘수축’이 그러게 무시무시한 통증을 내포한 단어라는 걸 나는 정말 몰랐었다. 

“그럼 이거 빼드릴까요? ”

간호사가 내 팔에 꽂힌 링거를 보며 묻는다. 

“그게 뭔데요? ”

“자궁수축 빨리 되라고 넣는 약이예요. 빼면 좀 덜 아플 거예요. ”

“빼주세요! ”

아니, 이 마당에 진통제를 놓아주지는 못할망정  더 아프게 하는 주사를 꽂고 있었다니. 자궁이야 좀 천천히 수축되면 뭐 어떤가. 

링거 바늘을 뺀 간호사가 갑자기 침대 위에 올라오더니 내 배 위에 올라타서는 체중을 실어 배를 꾹꾹 누른다. 그 때마다 아래로 피가 쿨럭쿨럭 쏟아진다. 으악!  진짜 아프다. 자궁 안에 피가 남아있지 않도록 다 빼내야 한단다. 

 나는 지금 산모패드라는 기저귀(진짜 기저귀, 애기들이 하는 일자 종이기저귀 그거다)를 차고 엉덩이  밑에 또 넓은 흡수패드를 한 장 깔고 누워있다. 말이 산모패드지, 이 기저귀는 흔히 쓰는 생리패드와는 다르게 날개는커녕 접착띠조차 없다. 그냥 팬티 안에 잘 넣어두고 있는 거다. 이러니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쓸리고 행여 빠질까 봐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내 팬티 안에 이런 무지막지하게 큰 기저귀가 들어가다니 그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하긴 지금 입은 이 팬티가 팬티냐.... 솔기를 터놓으면 보자기로 써도 되겠다. 레이스로 꾸며져있어 실제 천은 얼마 들어가지 않은 손바닥만한 팬티. 신축성도 좋아 입으면 엉덩이에 탁 달라붙는 그런 팬티, 다시 입을 수는 있을까? 

 엉덩이는 피에 젖어 끈끈하고, 아까 흘린 땀으로 온 몸이 다 축축하고 너무 찝찝하다. 샤워 좀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다. 

  침대 아래로 내려가 서보니 배가 텅 빈 것 같고 몸이 너무나 가뿐하다. 발을 질질 끌며 걸을 만큼 무거웠던 내 몸이 날아갈 듯하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입고 있던 산모가운을 들춰 보니 너무 실망스러웠다. 배가 조금도 꺼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 이 배 안은 텅텅 비어있나? 손으로 꾹 누르면 피시시 바람이 빠질 것 같다. 손으로 눌러보니 오, 놀랍게도 그렇게 딱딱했던 배가 물렁물렁해졌다. 그러고 보니 좀 쪼글쪼글해진 것도 같고. 

 출산한 지 6시간 안에 소변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출산하면서 애기 머리에 짓눌려 찌그러진 방광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간호사가 ‘억지로라도 소변 보셔야 해요.’ 신신당부를 하고 나갔다.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갔다. 산모패드에 묻은 엄청난 양의 피에 놀랐다.  

그런데 분명히 오줌이 마려워서 갔는데 도대체 오줌이 나오지를 않는다. 응- 힘을 줘봐도, 애기들 오줌 누이듯이 쉬- 하고 소리를 내봐도 분명히 아래가 간질간질하고 뭐가 좀 나오면 시원할 것 같은데 나올듯 나올듯 나오지 않는다. 한 20분 정도 변기에 앉아 있다가 포기하고 나왔다. 변기에 앉아있는 것도 너무 힘이 든다.  


오후 3시 


남편과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모두가 돌아왔다. 점심 먹고 돌아오시는 길이라고 한다. 좁은 병실이 북적북적해졌다. 

사돈지간의 어색하고 의례적인 분위기. 이 분위기는 참 싫다. 나는 당연히 친정에서의 모습과 시댁에서의 모습이 다르니 양가 어른이 다 모여 있으면 내가 제일 난감하고 어색해지는 것이다. 양가의 어른들은 이제 아기라는 공통화제가 생긴 것을 무척 기뻐하셨다. 

아기를 보고 온 시어머니 말씀

“아유, 어쩌면 그러게 지 애비 딱인지. 어릴 때 J 모습 고대로예요. ” 

우리 엄마 - “그래요? 입매랑 이런 데는 우리 H 어릴 때 얼굴도 보이던데. ” 

시어머니 - “아유, 내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니까요. J야,  어때? 니 백일사진이랑 똑같지? ”

J - “ 그래요? ” 

시어머니 -  “ 어머, 쟤가 저렇게 눈썰미가 없어. 고냥 너라니까. 


누굴 닮았다고? 내가 보기엔 책에서 보던 다른 신생아 얼굴이랑 진짜 너무 똑같던데. 


3시 30분 


다시 소변보기 시도. 

세면대에 수도꼭지를 조금 틀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물소리에 자극되어서 아까보다 더 강한 요의가 느껴진다. 그런데 역시나... 아, 소변아 너 보기 참 힘들다. 

간호사실에서 전화 왔다. 

“소변 보셨어요? ”

“아니오. 아직요. ” 

전화가 끊기더니 곧 간호사가 주사기와 무슨 줄 같은걸 들고 들어왔다. 간호사는 내 이불을 벗기고 산모가운을 썩썩 풀어헤치더니 그 가느다란 호스 같은걸 요도에 꽂는 것이었다. 으악! 

아아아~ ‘으악!’이었다. 진짜 너무 아팠다. 카데터로 소변을 뽑아내는 것이란다. 

“소변 못 보시면 방광 기능이 약해져서 나중에 두고두고 고생하세요. ”

아, 뭐야. 애기 낳았는데도 뭐 이렇게 아픈게 많이 남아있냐. 또 뭐가 있나.... 대변도 못보면 그것도 억지로 뽑아내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기 낳기 바로 직전에도 소변을 뽑아냈었다. 조금이라도 산도를 넓히기 위해 방광도 비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뭐 소변줄을 꽂는지 마는지 뭐를 뽑아내는지 전혀 감각이 없었다. 뭔 짓을 해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그만큼 배가 아팠나보다.  그러면 ‘아, 그래 애기도 낳았는데 이까짓 아픔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씩씩해져야 하는데 너무 큰 고통을 겪고 나니 고통 자체가 너무나 두렵다. 아주 조금 아픈 것도 무섭고 벌벌 떨린다. 몸은 고통을 기억한다. 그래서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아픈 건 싫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건?  어디든 아픈것. 

“계속 소변 못보면 어떻게 되나요?”

“계속 뽑아내야죠. ”

간호사는 억지로 뽑아간 내 소변을 들고 돌아갔다. 

으으으- J한테 물 달래서 잔뜩 마셨다. 


병실 안의 전화벨이 울렸다. 간호사였다. 

“모유수유하실꺼죠? ”

“네. ”

“그럼 수유실로 내려오세요. ” 

그러고보니 아기 낳고 나서 처음으로 아기를 보는 것이다. J가 따라왔지만 수유실에는 못 들어오게 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갔다.  

수유실 안에는 이미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산모들도 있었고 그냥 아기를 안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 산모들도 있었다. 

간호사가 내 팔 안에 아기를 안겨주고 갔다. 내 아기라..... 역시 현실감이 없다. 내 배속에 있다가 나온 놈이다. 아직 이름도 없는 내 아기. 

옆의 아기들과 비교해보니 우리 아기는 유난히 더 빨간 것 같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나를 보는 듯하다. 배냇저고리를 걷어 올려 손가락도 보았다. 손가락이 꼬물꼬물하다. 

아기는 품에 안으면 무조건 입을 짹짹 벌린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젖꼭지를 찾는다. 먹이찾기 반사라고 하는데 새끼돼지들, 새끼강아지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젖냄새가 나는건가? 배가 고픈가? 

젖꼭지를 물려주자 아기는 쪽쪽 빤다. 하지만 젖이 나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젖이 안 나와서 그런지 아기는 도로 뱉어내버렸다. 다시 물려보려 했지만 젖꼭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간호사가 와서 자세를 도와주었다. 

“젖꼭지만 물리면 아프구요, 여기 검은 부분 있죠. 유륜까지 다 물리셔야 돼요. 그래야 젖 분비도 더 잘 되구요. ” 

“네에, 근데 지금 배 안 고픈가 봐요. ” 

안고 있으니 아기는 잠이 들었다. 보고 있다가 간호사가 달라기에 주고 올라왔다. 

누구를 닮았는지 아기가 예쁜지 어떤지 나는 여전히 현실감이 없고 얼떨떨하고 별다른 감정도 없고... 아기를 낳자마자 샘솟듯 솟으리라고 생각했던 모성애는 어떻게 된 걸까. 이런 멍하고 신기하기만 한 감정이 모성애는 아닐텐데.   





드디어 성공. 

시계를 보니 무려 30분을 변기에 앉아있었다. 세면대 물 틀어놓고 온통 요도에만 신경을 집중해서... 그렇게 안간힘을 쓴 결과 드디어 나왔다.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뜨듯한 물. 아, 시원해.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본 소변 중 가장 반갑고도 시원했다. 

좌욕실에 가서 좌욕을 하고나면 그나마 조금 개운하다. 따듯한 물이 상처 입은 회음부를 씻어주고 또 핏기도 씻어주고 나면 몸도 더 가뿐해지는 것 같다. 


저녁 6시 


 좀 자려고 누웠는데 신생아실에서 다시 전화 왔다. 아기가 우니 내려와서 수유하라는 것이다. 수유실에 내려가서 애기한테 젖을 잠깐 물리고는 와서 다시 좀 누우려고 하는데 또 전화 왔다. 애기가 계속 운다는 것이다. 

친정엄마는 안 나오는 젖을 먹이니 애가 배가 고파 그런거라고 그냥 분유 먹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분유 먹이면 나중에 애가 젖을 안 문다는데? ” 

“그런게 어딨냐? 주면 주는대로 먹는거지. 너두 좀 쉬어야지. 애 젖 먹일려면 아예 데려다 놓던지.” 

수유실에 내려가니 간호사도 모유수유하려면 모자동실 쓰는게 편할꺼라고 한다. 

그런데.... 

무서웠다. 지금 당장부터 애기와 함께 있으라고? 오늘 애기 낳았는데 오늘부터 애기를 돌보라고? 

나는 피와 땀을 쏟았고 죽도록 피곤했고 쉬고 싶었다. 그리고... 애기한테는 별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죄책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럼 그냥 분유 먹이세요.’ 하고는 올라왔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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