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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정 Jul 04. 2022

0화 - 레시피라는 정답의 위안

나는 2020년까지 수입 유통회사의 8년 차 MD였다. 맞다. ‘뭐(M)든지 다(D)한다’는 바로 그 MD였다. 첫 번째 직장을 1년 8개월 만에 퇴사하고 두 번째 직장을 그럭저럭 6년째 다니고 있던 여느 날이었다. 비슷하게 흘러가는 나날 중 특별할 것 없던 날. 월요일이었고 막 주간회의를 끝낸 참이었다. 나는 조용히 사수의 팔 한쪽을 붙잡고,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담담히 물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지난 뒤, 나는 회사를 나왔다.


서른이 훌쩍 넘는 동안의 나는 어쩌면 성실하게, 다르게 보면 별 깊은 생각 없이 여기까지 왔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갔고, 옷을 좋아해 의상학과를 택했으며, 당연하다는 듯 패션회사에 취업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뚜벅뚜벅 거기까지 걸어갔다. 됐다! 드디어 꿈꿔오던 MD가 되었다. 패션업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 내가 자랑스러웠고 기특했다. 이제 이렇게 한 발자국씩 열심히 가다 보면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을 살지 않을까 조심스레 작은 희망을 품기도 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다는 것인지 내게 묻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그건 퇴사 후 내가 나에게 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나는, 왜! 어째서! 그토록 꿈꿔오던 길을 버리고 퇴사를 하게 된 것일까? 뭐가 문제였던 걸까? 물론 이게 다는 아니겠지만, 고민 끝에 우선 몇 가지 문제들을 추려볼 수 있었다. 첫째, 다른 길은 미처 둘러보지도 않은 채,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둘째, 나라는 사람에 대해 깊이 살펴보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진로를 정한 것. 셋째, 그저 멋지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패션업계에서 제일 그럴듯해 보이는 MD가 되어볼까? 와 같은 안일한 태도로 삶을 대한 것. 


되돌아보니 나는 잠시 멈춰서 나 자신에 대해 더 자세히 관찰하고 살피는 시간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가, 이 일이 과연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스스로 답을 내보아야 했다. ‘멋있어 보여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와 같은 건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멋대로 ‘멋’과 ‘재미’가 있으리라 상상한 MD의 삶은 나와 그리 잘 맞진 않았다. 솔직히 8년 가까이 이 일을 했으니 아주 안 맞았다고 말을 하는 것도 우습고 슬프지만, 억지로 맞추며 참고 버텼다는 표현에 가까운 나날을 보냈다. 이렇게 괜찮아 보이는 일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 나는 많은 시간을 썼다.


퇴사 후 멈춤이라는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요리를 했다. 새삼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아 가는 중이다. 요리는 첫 번째 과정부터 약간 들뜨기 시작한다. 


메뉴를 정하고 식재료를 고르고 부엌에 데려와 깨끗이 씻기고 다듬는 일. 




깨끗한 도마 위, 재료들을 가지런히 올려 두고 하나씩 하나씩 손질해 나가는 이 순수한 과정이 좋다. 찌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파와 감자와 버섯을 썰어야 하고, 쿠키를 만들기 위해서는 버터와 설탕, 계란 그리고 밀가루를 섞어야 한다. 이미 정해져 있는 레시피가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크다. 그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아주 옳은 일이라는, 이 요리를 완성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라는 확신이 주는 위안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의문을 품은 채 살아왔다. 커다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잔가지처럼 뻗어 나온 작은 선택들을 하나하나 해오고 있다. 답은 끝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는 것이 남을 것이고, 만족과 후회는 나의 몫이다. 무엇이 답이라 정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모호한 채로 지속되는 이 삶 속에서,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기 위한 레시피, 그러니까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과도 같은 이 레시피의 존재는 내게 다정한 위안이 되어 준다. 요리를 할 때만큼은 하나하나의 결정에 의문을 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미 정해져 있는 결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요리는 반드시 완성된다는 것. 그건 어쩌면 내가 한 선택이 정답이기만을 바라는, 나처럼 게으른 사람을 위한 찰나의 위안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내 삶의 답을 발견하기 위해 살아가는, 이 애틋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잠깐이지만 커다란 위안을 발견할 순간이 있다는 것은 몹시 기쁜 일임에 분명하다. 이 기쁨을 자꾸만 경험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우리 집 작은 주방에서 앞치마를 질끈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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