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 네 번의 부고(訃告)를 받았다.
정확히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6일 동안 네 번의 부고를 받았다.
한 달에 네 번의 장례식도 놀라울 텐데… 6일 사이에 네 번이라니…..
제일 먼저 받은 부고는 친구보단 멀고 지인보단 가까운 사람의 부친상이었다.
그는 밝은 모습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려야겠다고 결심한 듯 평소처럼 명랑한 톤으로 부고를 전했다. 그리고 장례를 마친 직후에도 SNS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댓글에 모두 답글을 달아 아버지께서 잘 가셨다고 전해주었다.
“이렇게 보내드리면 되는 거겠죠?“ 하고 묻는 그에게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렸던 나의 심정과 예상치 못한 때에 찾아오는 후폭풍에 대해 얘길 나누려다 말았다… 그냥 평범한 위로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모가 돌아가셨다.
아빠의 바로 위 누님이시다.
불과 작년 가을까지 건강하셨던 고모가 불과 몇 개월 뒤에 소천하신 게 믿어지지 않았..다…
뉴욕에 사는 사촌언니(고모의 하나뿐인 딸)는 부고를 받자마자 최대한 빠른 비행 편을 찾았으나 직항 편이 없어서 프랑스를 경유해서 한국에 도착했다고 했다. 슬픈 마음으로 먼 길을 비행하느라 몸도 마음도 얼마나 힘들까…..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며 슬퍼하는 언니를 보며 ‘엄마’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따뜻함과 든든함, 애틋함이 떠오르며 마음이 묵직해진다…
우리 세대가 서로에게 더 힘이 되면 좋겠다.
언니의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오랜 시간 투병을 하셨고 요양 병원에 계시다가 임종하셔서 가족 분들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장례식장을 찾는 조문객이 무척 많았다.
나는 ‘며느리의 동생’ 자격으로 장례식장에 가서 많은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언니네 시어머니, 여러 시아주버니들과 시누이 등..
육개장을 먹으면서 장례식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고인은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 아들, 형, 동생, 삼촌, 시아버지, 할아버지, 동료, 그리고 이웃이라는 많은 이름을 가지고 생을 사셨다. 고인과 가족, 친지, 동료, 이웃 간에는 어떤 이야기와 추억들이 있을까?
고인이 가시는 길이 그 추억들과 함께 외롭지 않으시길요...
네 번째는 누군가의 물리적인 죽음은 아니다.
어떤 계기로 그 사람을 영원히 마음속에서 지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이 내 마음속에서 죽었다.
처음 그 계기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소위 말하는 ‘뇌정지’ 상태가 된 거 같았다. 생각이 멈추고 마음도 감정이 얼어붙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신체화 증상인지 몸이 아팠다. 아파서 누웠는데 잠이 들지 않았다. 잠을 못 이루니 다음날에도 괴로웠다.
특히 어지러움이 심했다.
“괜찮아?”라는 물음이 제일 듣기 싫었다.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나도 모르겠어서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스스로 모르겠을 만큼 마음이 굳어 있었다.
며칠을 멍한 상태로 있다 보니 자꾸 크고 작은 실수를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집에서 만든 딸기주스를 마시다가 흘려서 상의와 하의를 전부다 적셨다. 딸기의 선명한 예쁜 빨간색이 하얀색 옷에 묻어서 번지니까 마치 피처럼 보였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나니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생각도 돌아가지 않았다. 옷뿐 아니라 테이블 밑에도 생딸기 주스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데…..
‘뭐어어어부터어어어 해야 하지이이이이이…‘
집중하려고 노력하니 아주 느리게 느리게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멍하니 며칠을 보내고 나니 빨리 이 장례(?)가 끝났으면 싶었다.
나만의 애도 의식을 하고 추억의 물건들을 내다 버렸다. (사실 한 개는 아직도 못 버리겠어서 고민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정리하니 마음도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그 사람을 볼 일이 없겠지만 부디 그 사람이 남은 생을 잘 살아가길…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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