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10주기를 맞이해 마왕이 OST와 단역 출역을 한 영화 《바럼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를 봤다. 이 영화는 동명의 유하 시인의 시집을 바탕으로 한 감독 유하의 영화이다. 이제는 시단을 떠나간 감독 유하의 초년작이라 그의 영화 속 원형을 찾는 재미 역시 쏜쏠하다. 유튜브에 도는 싸구려 비디오 테이프 속 영화적 리얼리티와 유치하기 짝이 없는 현대판 신데렐라 서사가 결합되었는데, 재밌기보다 신기하다. 유하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시인이자 감독의 꿈을 꾸는 영훈에서 내 초라한 초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압구정동 오렌지족에 대한 입체적 재현과 물질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유하의 비판적 시각은 시가 아닌 영화에서도 살아있는데, 그의 강남3부작을 포함해서 드러나는 문제점인 '서사의 유치함'이 돋보여 그닥 매료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사와는 별개로, 풍요로운 사회실수록 궁핍해지는 인간 내면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면에서 짚어볼만헌 작품이라 생각한다.
바람이 분다,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분다,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 오라
폴 발레리 이후 수많은 변주를 겪었던 <해변의 묘지>의 유명한 구절에 실려 가본적 없던 찬란한 90년대 강남으로 회귀하고 싶다. 그것이 안된다면 유하의 시와 영화에 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