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독서일기
얼굴과 머리: 형식과 영혼, 그리고 귀족예절론
얼굴과 머리는 우리의 신체에서 하나로 이어진 듯 보이지만, 각각 독특한 역할을 지닌 두 영역이다. 이 둘은 두개골이라는 중요한 영역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그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 둘의 공통으로 정체성의 징표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얼굴은 외형적으로 타인과의 차이를 통해 개인의 특징을 구별 짓는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머리는 의식을 규정한다. 얼굴이 세월의 풍파를 담아내는 것처럼, 머리 역시 세월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반영한다. 자신이 느낀 감정, 사유, 몽상, 심지어 꿈마저 기억된 영혼의 성채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차이가 명확하다. 머리는 영혼의 요새요, 얼굴은 영혼을 담은 형식이다.
얼굴은 감정이 그려지는 생생한 캔버스이며, 미소, 찡그림, 눈의 반짝임 등으로 우리의 감정 세계를 즉자적으로 드러낸다. 눈은 종종 영혼의 안식처라고 여겨지며, 사람의 마음속을 엿보는 통로 역할을 한다. 입은 생존의 통로이자 존재의 집인 언어를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간과되기 쉽지만 미소를 담당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인간은 얼굴을 통해 영혼을 표현한다. 영혼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사회화된 가면을 쓰기도 하지만, 이런 위장은 반대로 얼굴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영혼의 무의식으로 집어둔다.
머리는 지성의 고요한 수호자이자, 영혼의 셈이다. 그 성채 안에는 인지, 기억, 꿈 등 사유의 중심인 두뇌가 자리 잡고 있다. 두뇌야 말로, 과학으로 분석된 영혼의 시원이다. 두뇌를 포괄하는 머리는 얼굴의 화려함 없이 작동하지만, 그 중요성은 결코 덜하지 않다. 머리는 모든 생각과 계획의 조용한 설계자이며, 삶의 일상적인 절차를 보장하는 복잡한 교향곡을 지휘한다. 얼굴이 외부와 상호작용하고 반응하는 동안, 머리는 내적으로 사고하고 결정한다.
이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얼굴과 머리는 서로의 필수 요소로서 유기적으로 연결할 때 비로소 존재의 총체성이 빛난다. 만약 두뇌가 없다면 얼굴의 표현력은 의도를 상실하고, 얼굴의 표정이 없으면 머릿속의 생각은 영원히 감춰질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아름답다고 간주되는 얼굴일지라도, 영혼이 비어있다면 그것은 사물일 것이다. 영혼은 형식을 보완해주는 것을 넘어, 신체를 인간의 형식으로 규정한다. 즉, 영혼은 '고깃덩어리'를 인간의 고귀한 신체로 격상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때, 아름다움의 범주가 형식의 아름다움, 얼굴이나 신체의 아름다움에만 국한되기 쉽다. 그것도 매우 획일화되고, 폭력적인 규정하에 말이다. 영혼을 경외시한 채로 형식의 규격화된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현상이 바로 외모지상주의이다. 얼굴만을 찬양하는 오늘날의 병폐는 사물화된 물질 자본주의의 타락한 초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의 숭고한 아름다움만 찬양하자는 플라톤의 주장을 되풀이하자는 것은 아니다. 얼굴의 미에 함몰된 머리의 아름다움을 복원해, 얼굴과 머리-형식과 영혼의 조화를 통해 잃어버린 존재의 총체성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얼굴과 머리의 조화로운 총체성의 회복에 대한 전술로 박상수 평론가의 귀족예절론을 말하고 싶다. 귀족예절론이란 쉽게 말해 댄디즘의 한국 시단의 미래파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댄디즘이란 원래 영국에서 비롯된 우아한 복장과 세련된 몸가짐으로 대중들에게 정신적 우월감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멋쟁이를 의미한다. 영국에서는 외형에 초점을 맞춘 댄디즘을, 이후 보들레르와 랭보로 대표되는 프랑스 댄디스트들은 문학과 의식의 댄디즘을 말했다. 이러한 댄디즘을 원형으로 한 정신은 2000년대 한국 새로운 젊은 시인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인간 소외에 대한 나르시시즘의 태도로 확립한 귀족 예절론이다. 귀족예절론은 정신의 자기 절제를 통해 대중과 분리되는 우아한 나르시시즘, 쉽게 말해 건강한 자기만족이다. 머리에서 의식으로 통제하는 정신의 우아함이 얼굴로 표상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육체와 영혼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귀족예절론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획일화된 싸구려 미학이 아닌, 타자와의 차이를 통해 진정으로 조화로운 미의 추구이다. 귀족예절론을 통해 잃어버린 머리와 얼굴의 아름다움이 화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선 나부터 한 줌의 댄디즘으로 정화해야겠다.
-박상수 시인의 <귀족예절론>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