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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를 닮은 남자 윤석열

by 꿈꾸는 곰돌이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 시점, 파국으로 치닫는 윤석열을 보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가 떠오른다. 지난 12월 3일 설마가 현실이 되는 공포 속에서 6시간을 견디었다. 윤석열의 폭주는 비극의 한 장면 같았고, 역사의 무대 위에서 그는 맥베스처럼 인간의 탐욕과 야만적인 폭력으로 타락한 인간의 초상을 보여줬다. 거추장한 수사가 필요 없다. 권력의 탐욕이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타락시키는지 보여주는 <맥베스>는 정치인 윤석열의 행보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역시 고전은 위대한 예언자이며, 현대 비극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윤석열과 맥베스의 폭주를 비교해보자.

희곡 속 맥베스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처음에는 충성스러운 장군, 성실한 신하였으나 마녀의 예언에 권력욕을 느끼며, 아내의 속삭임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른다. 분명 개인적인 권력욕으로 스코틀랜드를 피바다로 만들려한 위험한 인물이다. 윤석열은 맥베스처럼 흥미로운 서사를 보여줬다. 그는 박근혜 게이트를 수사하며 진보적 대중에게 지지를 받았고, 검찰총장 시절에는 공정과 원칙을 상징하는 인물로 치켜세워졌다.

‘정의로운 검사’라는 미화를 등에 업고 민주당 인사로 평가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진영을 바꾼다. 그는 보수 우파의 러브콜을 받아들였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 권력욕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맥베스가 왕위를 차지한 뒤 폭주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윤석열 역시 대놓고 독주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던 윤석열의 말은 지배 권력에 충성하겠다는 말이었다. 원래 민주당 출신이라 극우와는 거리가 멀었던 윤석열이지만, 대통령 경선 때부터 강경 우익들과 손을 잡았다. 임기 초부터 시작된 레임덕에 몰리자 극우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우경화 시작한다. 뉴라이트 논란, 종북몰이, 권위주의적 행보 등 끊임없는 우경화의 패달을 밟았다.

맥베스 부인은 남편의 도덕적 양심을 거세하며 왕좌 찬탈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김건희 또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지금까지 밟혀진 여러 증거가 김건희의 국정 개입을 폭로하고 있으며,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비리와 스캔들로 논란을 일으켰다. 명태균 게이트라 불리는 폭로들은 맥베스 부인의 그림자를 그녀에게 비춘다. 처음에는 맥베스처럼 윤석열의 뒤에서 조력자로 보였겠지만, 그 끝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죄책감과 불안이 인간을 무너뜨리듯, 그녀도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맥베스는 왕위에 오른 뒤 스스로 채우지 못할 공허함에 갇혔고,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폭력을 반복했다. 그는 정적을 대거 제거하며 권력을 남용했다. 윤석열의 행보도 다를 바 없다. 그는 권력을 굳히기 위해 이재명과 그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들을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탄압했고, 국정원과 군대까지 이용해 자신의 정권을 정당화하려 했다. 모든 국가 기관이 억압의 도구로 전환된 모습은 맥베스가 왕위를 지키기 위해 피바다를 만들었던 장면과 다를 것이 없었다. 공정과 정의, 자유민주주의를 외쳤던 그는 결국 친위 쿠데타라는 폭정을 시도하며 한국 사회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다.

김건희는 특히 맥베스 부인을 떠올리게 한다. 맥베스 부인은 마녀의 예언에 기대며 현실을 왜곡했고, 남편의 폭주를 부추겼다. 마찬가지로 김건희는 무속 논란과 천공의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를 진창에 빠뜨렸고, 동시에 남편에게도 악영향을 끼쳤다. 외신이 그녀를 ‘레이디 맥베스’라 조롱했듯, 그녀는 윤석열 권력이 가진 탐욕과 광기를 부각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 모든 폭주의 근원이 무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김건희와 윤석열의 본질은 권력 자체의 탐욕에 있다. 무속이 아니라, 권력욕이 그들을 파괴의 길로 이끌었다.

맥베스와 아내의 탐욕이 스코틀랜드를 피바다로 만들었듯, 윤석열과 김건희의 행위 또한 이 땅을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몰아넣었다. 맥베스가 자신의 불안감과 죄의식 속에서 점차 본능의 길로 내려앉아 스스로를 파멸시켰듯, 윤석열도 마찬가지다. 그 시도된 쿠데타는 그가 지키려 했던 권력의 허상을 보여줬고, 합의된 의회 민주주의마저 파괴하려 했다. 맥베스가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모든 걸 파괴했던 비극은 이 정권의 행보와 끔찍하게도 겹쳐 보인다.

다행히 쿠데타는 좌절됐다. 대중의 분노가 들불처럼 타올랐고,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윤석열은 스스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이 땅의 분노는 이미 그의 몰락을 염원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맥베스가 세 마녀의 예언대로 파멸했듯, 윤석열과 김건희가 그러한 결말에 다다를지는 알 수 없다. 이 시대에 신은 없고, 예언 또한 없다. 하지만 맥베스를 몰락으로 이끈 것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대중의 투쟁이었다. 우리 역시 그들의 몰락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믿어야 할 것은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손이다.

맥베스처럼 예언 속 맥더프에게 목이 배어 몰락하길 기도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이미 끝났다. 맥베스처럼 몰락시키겠다는 행동이 우리의 힘이다. 대중의 분노와 투쟁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증명할 것이다. 그러니 광장에 서야 한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맥베스처럼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길 바라는 간절함은 곧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들이 몰락할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을 만드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퇴진의 그 순간까지 광장에 서자. 촛불을 태우며, 우리의 급진적인 꿈을 증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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