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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섬세한 변주: 당신이 필요해요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by 꿈꾸는 곰돌이

사랑의 섬세한 변주: 당신이 필요해요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브레히트/김남주역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누군가가 건넨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말에서 출발한다. 이 단순한 고백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모두 변하게 만들고, 심지어 시적 화자의 현실마저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그저 "정신 차리고 길을 걷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리고, 심지어 빗방울 같은 사소한 세계와의 접촉마저 두려워지게 된다. 브레히트의 초점은 아슬아슬한 생존의 경계선 위에 선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모습은 단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큰 사회적 맥락에서도 이 시를 다시 읽어볼 여지가 있다. 특히, 억압과 저항이 크게 부딪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 시의 메시지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수많은 억압과 그에 대한 저항의 역사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많은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우경화로 인한 권위주의 조치 강화, 시민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억누르려는 표현의 자유 틴압의 움직임,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북풍몰이 등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본질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았다. 브레히트의 시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얽혀 다시 읽힐 수 있다.

정치적, 사회적 억압이 일상에 스며들게 되면, 개인은 자신의 내면부터 억눌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정신 차리고 길을 걷는다"는 행동조차 이제는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 되고, 심지어 존재를 위협하는 빗방울조차 두려워져 버린다. 윤석열 정부의 행보가 초래한 공포와 긴장은 한 개인이 자유롭게 살 권리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다. 비판을 말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안정’을 이유로 감시당하고, 집회에 나선 이들은 공권력의 강압 앞에 위축당한다. 브레히트가 그린 두려움 속에서의 생존은, 바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시는 더 큰 희망의 기반을 다진다.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목소리가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누군가가 당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책임감은, 단순히 두려움에 갇힌 개인을 넘어서는 힘을 만들어낸다. 브레히트의 화자는 빗방울조차 살해 도구로 변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왜냐하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시대 역시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무너지는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는 우리 모두의 연대와 항거를 필요로 한다.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거리에서의 모든 자유를 빼앗는 암울한 상황, 다시 2차 계엄이라는 최악의 가정을 해본다. 그 속에서도 시인의 화자처럼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살아 있어야 한다.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는 이유를 깨닫고, 동료 시민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 부당함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존재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여정을 필요로 한다.

브레히트의 시는 이 두려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과 연대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그의 시적 언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에 갇히지 않고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걸어야만 한다. 설령 그 길 위에는 억압과 폭력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발걸음은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앞서 수많은 시대가 그래왔듯, 또다시 부당함에 맞서야 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다. 두려움을 넘어선 용기는 바로 “필요”로부터 시작한다.

언젠가 브레히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수많은 저항의 역사를 이어온 저항 정신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우리는 평범한 존재로서 서로를 지키고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는 여정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길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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