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켜진다. 작은 불꽃 하나가 어둠을 밀어내며 천천히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더 깊은 것을 본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태우는 어떤 존재다. 이 작은 불꽃은 타오르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의 마음과 대화를 나누고, 오래된 침묵 속에 잠든 사유를 깨운다. 박정대의 「촛불의 미학」은 이 사유를 시작점으로 삼는다. 그는 불을 응시하며 "고요한 혁명"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열어간다. "촛불을 켠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선언이다. 이 행위는 외부적 조명을 밝히는 동시에, 인간의 내면 어딘가를 비추며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에 기대어 본다면, 촛불을 켠다는 것은 단순히 어둠을 몰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깊고 원초적인 열망, 끓어오르던 욕망과 상상력을 조심스레 불러내는 일이다. 이 불꽃은 광폭한 혁명의 불길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조용히, 은밀하게 존재의 표면을 닦아내고, 존재의 가장 깊은 층위에 침투하는 작은 한 점의 불이다. "바라본다." 이 단어는 어떠한 행위보다도 더 조용하지만 더 강력하다. 바슐라르는 불을 바라보는 인간이 곧 고요한 몽상에 잠긴다고 했다. 불은 인간의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원초적인 동반자다. 흔들리는 촛불의 움직임은 우리의 마음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파동을 닮았다. "바라본다"는 이를 깨닫는 의식적 태도다. 화자는 불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불로부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발견하려 한다. 불은 인간 내면의 창조적 자아와 파괴적 욕망의 경계선을 드러낸다. 그 불 앞에서, 화자는 자신 안에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목격하며 고요히 응시한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화자가 말하는 "고요한 혁명"을 향해 간다. 혁명은 흔히 불과 피의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여기서 그것은 경쾌하게 비껴간다. 이 혁명은 외부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격렬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천천히 스며드는 변화다. 촛불이 한 꺼풀씩 태워내는 것처럼, 화자는 자신 안에 쌓인 오래된 관념과 억압된 욕망을 태운다. 이 혁명은 무언가를 부수고 남기는 대신, 더 깊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작은 불꽃이 고요 속에서 기적처럼 자신을 태우며 새로운 차원의 빛을 발하듯이, 그 혁명은 조용한 세계 속에서 웅장한 전복과 탄생을 품어낸다. 촛불은 스스로를 태워 사라지기에 더욱 아름답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상징이다. 우리는 흔들리는 존재다. 언젠가는 꺼질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밝게 타오르기를 꿈꾼다. 이 작은 혁명은 대중적 변화를 요구하는 외침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자신과 바깥 세계를 새롭게 마주하는 개인적 선언이다. 인간의 혁명은 언제나 내적으로 시작된다. 불 앞에서 우리는 더 작아지고, 더 비워지고, 그러므로 더 완전해진다. 박정대의 이 시는 마치 하나의 촛불처럼 타오르며 우리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인다. "혁명은 외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에서 피어오르고, 고요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 속삭임 속에서 우리는 불을 통해 자신과 화해하고, 동시에 자신을 새롭게 초월해가는 인간의 끊임없는 여정을 본다. 작은 불꽃 하나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공간 속에서, 우리는 사유하고 변화하며, 조금씩 혁명 속으로 스며든다. 촛불은 켜지고, 우리는 바라본다. 그리고 고요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촛불의 미학은 우리의 내면을 비추고, 우리의 혁명은 그 안에서 조용히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