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다시 촛불을 들때

촛불의 미학

by 꿈꾸는 곰돌이

촛불의 미학



촛불을 켠다

바라본다

고요한 혁명을



- 박정대


<촛불의 미학>



촛불을 켠다

바라본다

고요한 혁명을



- 박정대

촛불 앞의 사유: 고요한 혁명에 대하여촛불이 켜진다. 작은 불꽃 하나가 어둠을 조심스레 밀어내며, 그 몸을 가볍게 흔든다. 불안하게 깜빡이는 그 속에서,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깊은 곳을 엿보게 된다. 이건 단순히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아니다. 오히려 차분히 제 몸을 태우며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는 뭔가다. 작은 불꽃이 타오르며 우리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네는 듯하다. 오래 잠들었던 사유를 깨우고, 우리 마음 깊숙이 슬며시 손을 내민다. 박정대의 「촛불의 미학」은 바로 이 조용한 울림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그는 불꽃을 묵묵히 응시하며, “고요한 혁명”이라는 뒷문을 연다.


“촛불을 켠다”는 것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 행위에는 선언처럼 강렬한 울림이 담겨 있다. 바깥의 어둠을 밝히는 동시에, 인간 내면 어딘가 깊은 곳까지 빛이 닿는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을 떠올려보면, 촛불을 켠다는 일은 단순히 어둠을 몰아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안에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원초적 열망과 끓어오르던 상상력이 불꽃에 이끌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불꽃은 누군가 혁명의 깃발을 높이 들 듯 불타오르는 불길이 아니다. 오히려 속삭이듯, 조심스레 존재의 겉면을 닦아내며, 때때로 가장 깊은 층위까지 스며드는 작은 점 하나에 가깝다.


“바라본다.” 이 짤막한 말 속에는 무심한 듯 강한 힘이 서려 있다. 바슐라르는 불을 바라보는 인간이 곧 고요한 몽상에 빠진다고 했다. 불은 인간의 태곳적 기억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곁에 있어온, 마치 숙명 같은 친구다. 흔들거리는 촛불의 자그마한 파동을 보고 있자면, 마음속 감정의 물결 또한 그렇게 잔잔히 일렁이는 듯하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 불빛 너머 자신을 비추고,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것들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의식적 행위다. 불은 인간 내면의 창조와 파괴, 그 팽팽한 경계선 위에 우리를 세워 놓는다. 그 불 앞에서 화자는 태어나고 사라지는 자기 안의 모든 것들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응시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화자가 말하는 “고요한 혁명”으로 흐른다. 혁명이라 하면 흔히 불길과 피, 치열함을 떠올리지만, 여기의 혁명은 오히려 그 자리를 슬며시 비켜간다. 세상을 전복하는 큰 소란이 아니라, 안으로 스며드는 작은 변화의 움직임. 촛불이 자신을 한 꺼풀씩 태워내듯 화자 역시 내면 깊이 쌓인 오랜 관념과 억압된 욕망을 조금씩 태워 보낸다. 이 혁명은 무엇을 부수고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작은 불꽃이 고요 속에서도 자신을 지우며 다시 빛을 지피듯, 혁명 또한 침묵의 세계 한가운데에서 아주 깊은 전복과 새로운 탄생을 맞이한다.


촛불은 조용히 타오르다 결국 스스로를 녹이며 사라지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흔들리며 살아가는 존재다. 언젠가는 꺼질 그 운명을 알면서도, 주어진 시간만큼은 밝게 빛나며 살길 꿈꾼다. 이 고요한 혁명은 거친 외침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침묵으로 건네는 내면의 선언이다. 인간의 혁명은 언제나 마음속에서 싹튼다. 불 앞에서 우리는 홀가분해지고, 마음을 비워내며, 그만큼 더 온전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박정대의 이 시는 내게 마치 촛불 하나처럼 조용히 타오르며 다가온다. 그리고 말없이 속삭인다. “혁명은 언제나 외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서 피어나고, 반드시 고요함 속에서만 진정 일어날 수 있다.” 이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불을 거울 삼아 자기 자신을 보듬고, 또 한편 새롭게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다정하고 고된 여정을 함께 걷는다. 작은 불꽃 하나가 머무는 상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조금씩 바뀌고, 어느새 혁명 속에 잠긴다.


촛불이 켜지고, 우리는 묵묵히 바라본다. 그 고요함에서 비로소 무언가 새로운 것이 피어난다. 촛불의 미학은 내면을 비추고, 우리의 혁명은 바로 그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감동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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