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 미학론을 바탕으로
작가인가, 글쓰기 전문가인가?
-루카치 미학론을 바탕으로
‘작가’라는 낭만적인 호칭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작가는 창조자이며 예술가로서, 작품 속에 자신만의 사유를 담아 현실을 넘어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경이로운 운명을 타고났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창조와 예술이 과연 가능한 일인 것인가?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자신만의 공간과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루카치가 이야기했듯, 발본적으로 자본에 적대적인 활동인 예술을 하고자 한다면, 역설적으로 자본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명제는 추상적인 생각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작가의 꿈을 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글 쓰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본주의가 예술에 대해 가진 적대적인 속성을 이해하게 된다. 창의성을 억압하는 상품으로서의 방송 말이다. 그때마다 스스로 묻곤 한다. 과연 ‘작가’인가, 아니면 그저 ‘글쓰기 전문가’에 불과한 것인가. 그 대답의 힌트는 루카치에게 있다. 죄르지 루카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겪는 존재론적 위기를 논했을 때, 그의 총체적인 시선이 분업된 노동 현장과 사물화된 시스템을 꿰뚫어 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루카치는 자본주의가 노동을 극단적으로 분업화하면서 인간의 총체적인 주관성이 해체되고 파편화된다고 보았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인 그가 노동 분업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동이 인류 발전의 진보를 이끈다는 변증법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을 견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으로서의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통찰이나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보다, 철저히 객관적인 묘사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사적이고 진솔한 경험마저도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품 가치에 따라 가공되고 포장되어 시장에 내던져지는 ‘콘텐츠’가 되어버리는 현실이다. 루카치는 이를 ‘체험의 매춘’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루카치는 예술의 ‘자본주의 적대성’을 역설하며, ‘작가’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요구되는 글을 효율적으로 생산해내는 ‘글쓰기 전문가’라고 보았다.
방송 작가로서의 삶은 루카치의 이러한 비판적인 통찰을 상시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아이템 회의에서 누군가의 삶의 발취자가 상품화될 서사로 대상화되는 것을 본다. 누군가의 치열했던 삶을 상품화하여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은, 아무리 휴먼 다큐멘터리의 탈을 쓰더라도 상품화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깊이 고민하고 탐구한 인문학적 사유와 내면의 감성이 담긴 문장들은 시청자의 이목을 끌기 위한 아이템으로 재단되고, 결국 더 많은 광고 수익을 가져올 ‘콘텐츠’라는 상품으로 소비되고 마는 현실이다.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방송국이라는 틀 안에서는 방송의 예술화는 어려운 것이며, 오직 방송의 상품화만이 존재할 뿐, 공영방송이든 종합편성채널이든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영혼이 담겨야 할 글쓰기라는 총체적인 예술은 어느새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즉 ‘노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방송 작가는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소외된 채 ‘시청자가 원하는 이야기’라는 자극적인 상품을 생산해내는 ‘글쓰기 전문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작가’라는 이름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글쓰기 전문가’로서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작가의 꿈을 갖고 방송 업계에 들어왔지만 필연적으로 소외된 노동을 하는 글쓰기 전문가인 내게 끊임없이 불편하게 남아 있다. 특히 직업의 윤리라는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사물화에 기여한다는 점이 도덕적으로 부끄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불편함이야말로 필자가 잃어버린 ‘작가’의 주관성을 찾아 헤매는 여정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자본주의가 예술에 적대적인 경향이 강한 것은 맞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 활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분명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송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서, 미학적으로는 예술적이며, 정치적으로는 반자본주의적인 영화를 제작하는 켄 로치와 마이클 무어와 같은 감독들도 있다. 이들은 물론 작가는 아니지만, 단지 개성 없이 영상을 우라까이하는 편집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곤조로 새로운 영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적인 감독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영상이라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단지 대상화하기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울분을 담아낸다. 직무는 다르지만, 이 둘을 전범으로 삼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글쓰기 전문가가 아닌 총체적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꿈에 접근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