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평범한 가장은 어떻게 기득권의 악인이 되는가?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 중인 <메이드 인 코리아>를 두고 ‘잘 만든 작품’이라 부르기엔 아쉽다. 내겐 명작이란 완성도와 창의성의 층위에서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해야 하나, 이 드라마는 빼어난 영상미를 제외하면 연출 면에서 많은 부분이 허술하게 느껴진다. 클리세 범벅의 장면들, 기대 이하의 정우성 연기, 그리고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역할조차 별 특별함 없이 흘러가는 플롯 등을 보면 겉으로는 대작의 탈을 쓴 싱거운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현빈의 2대 8 포마드 헤어스타일 외에 한 가지, 바로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의 악인의 탄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극중 주인공 백기태는 1935년생, 삼십대 중반의 가장으로 그려진다. 그는 오늘날 ‘기득권’으로 통하는 86세대의 아버지뻘이자, 산업화 한국을 일구어낸 주역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 다수는 땀 흘려 일한 평범한 노동자들이었지만, 그중 일부분은 권력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 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적폐로 남았다. 백기태가 바로 그 일부에 속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 없이 자라면서 가족의 맏이로서 남몰래 무거운 짐을 졌고, 열아홉 나이에 아버지까지 여읜 뒤엔 동생 둘을 키워내는 가장으로 살아야 했다. 그에게 가족이란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백기태가 저지르는 숱한 악행들은, 단순히 개인의 야망이나 탐욕 때문이 아니었다. 오직 ‘가정의 번영’만이 그의 목표였다는 사실이 대사 곳곳에서 강조된다. 몸은 국가 조직의 중정 과장이지만, 실상은 마약 밀매, 상관 살해, 검찰 침입과 도청 등 온갖 범죄에 손을 뻗는다. 모두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가족을 위한 사적인 욕망이자, 동생이 군에서 사고를 당하자 직접 뛰어들어 해결하려는 그 모습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백기태의 행보는, 격동의 산업화 시기 노동계급 출신이 지배계급이 되어가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애국’ 같은 거창한 말 뒤에는 언제나 가족과 혈연 집단의 안위가 숨겨져 있었다. ‘가족의 번영’이라는 사적 욕망이 ‘애국’이라는 공적 이데올로기에 슬그머니 가려지고, 이내 권력 남용과 부패의 명분이 된다. 동시대 악인인 전두환, 노태우, 김기춘 등 그 시대 악인은 말로는 애국이지만, 뒤로는 출세를 노렸다. 이들의 출세는 분명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가족주의라는 점이다.
이 비극적인 서사는 어느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특정 세대가 권력을 쥐고 유지해온 한국 산업화 시대의 구조적 병폐를 드러낸다. ‘애국’이라는 미명 아래 감춰진 가족 중심의 탐욕, 바로 그곳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만연한 악이 자라고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