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전쟁을 찬양하는 우익들에게

장뤽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

by 꿈꾸는 곰돌이

자본주의 전쟁을 찬양하는 우익들에게

-장뤽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


우파에겐 자본주의 국가는 가족이다. 그러니 가족을 지키는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국방에 미치도록 찬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방이란 말 자체가 모순적이다. 국가 방어를 전제로 하나, 필연적으로 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다. 그런 야욕이 오늘날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신냉전'이란 은어로 불리는 이 시대, 제국주의적 분쟁이 끊임 없이 터진다. 2022년 우크루아 러시아 전쟁, 2023년 가자 전쟁, 그리고 2026년 트럼프의 배네수엘라 침공까지... 바야흐로 제국주의 전쟁의 시대이다.

우파는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을 반긴다. 수많은 희생을 하더라도, 전쟁으로 국가의 위상과 힘을 드높이자는 것이다. 이런 호전적 전쟁광들애게 한 영화를 추천한다. 장뤽 고다르의 영화 <기관총 부대(Les Carabiniers)>이다.

영화의 시작은 시골의 가난한 두 농부, 울리스와 미켈란젤로의 삶을 보여준다. 이들은 어느 날 '왕'의 병사들로부터 매력적인 제안을 받는다. 전쟁에 참여하면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아무런 의심 없이 전장으로 향한다. 이 모습은 오늘날 군사력 증강을 통해 국가의 부와 영광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닮았다. 마치 강한 국방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이롭다는 듯한 환상을 보여준다. 힘을 통한 지배가 곧 번영을 가져온다는 단순한 믿음, 바로 그것이다.

전쟁터에서 두 농부는 왕의 명령대로 폭력을 휘두른다. 살인, 강도, 강간 등 여러 흉악한 전쟁 범죄를 일삼는다. 집에 보내는 편지에는 자신들의 이러한 끔찍한 활약과 함께, 이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값진 것을 손에 넣었다는 자랑으로 가득하다. 이는 전쟁을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 중 하나로 보아야 함을 암시한다. 국방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지는 무기 거래, 군수 산업의 팽창, 그리고 군사적 개입을 통한 자원 확보는, 현대판 약탈과 다를 바 없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되고, 그 폭력을 통한 부의 축적이 합법적인 시스템의 일부인 것이다. 긴 전쟁이 끝난 뒤, 두 남자는 마치 승리한 전사처럼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손에는 큼직한 보물 상자가 들려 있다. 가족들은 환호하며, 상자 안에는 온갖 보물이 가득할 거라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막상 상자를 열었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전혀 예상을 벗어난다. 반짝이는 금은보화도, 명예로운 훈장도 아니다. 상자에서 쏟아져 나오는 건 수많은 엽서와 사진들뿐이다. 그들이 피를 흘리며 싸워가며 얻었다고 믿었던 세상의 모든 부는, 결국 실체 없는 종이 조각, 그저 이미지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방과 안보를 통해 얻는다고 말하는 '국익'이나 '국가적 영광'이 대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처럼 '제국주의적 야만'을 앞세우는 이들의 미래상이 과연 진짜 번영인지, 아니면 그저 반짝이는 이미지의 향연일 뿐인지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젊은이들의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거나, 혹은 타국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그 모든 명분과 행동의 끝에 남는 것이, 결국 실체 없는 이미지뿐이라면 얼마나 허망한가. 자본주의 체제가 불어넣은 강국이라는 환상은 실상 자본과 권력의 이해관계가 얽힌 엽서 더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장 뤽 고다르가 담아낸 통찰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스펙터클'을 넘어서, 아예 '이미지 과잉'의 시대이다. 현실에서 겪는 경험이나 물질적 실체보다 이미지와 가상의 환상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울리스와 미켈란젤로가 수많은 엽서를 진짜 보물처럼 바라보며 만족하는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 즉자적 계급 의식을 지닌 현대인의 자화상과도 닮아 있다.

영화의 결말은 더욱 냉정하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두 농부는 '왕'의 약속과 달리, 새로 세워진 정권에 의해 '전쟁 범죄자'로 낙인찍혀 처형당하고 만다. 국가는 개인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다가, 필요 없을 때는 잔인할 정도로 가차 없이 내쳐버린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가의 번영이란 이름 아래 누군가는 희생되고, 그 대가로 남는 건 실체 없는 이미지와 허무한 죽음뿐인 개인의 비극이다.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의 생명과 노동을 소진시키고, 정작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묻게 된다. '국익'과 '영광'은 누구의 몫이 되고, 진정한 희생은 누구에게 전가되는 걸까.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비유 삼아, 자본주의 국가와 그들이 내세우는 전쟁의 판타지를 냉정히 해체한다. 군국주의적 신화가 만들어내는 환상,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자본의 탐욕과 개인의 소외를 예술적으로 그려내며, 군사력과 전쟁을 통한 국가 번영이라는 그럴듯한 구호가 결국엔 텅 빈 이미지와 비극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아프게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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