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부수는 독서일기’ 서문
독서는 흔히 쌓아 올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지식의 탑을 켜켜이 쌓는 것, 그것은 저축과도 같다. 이런 독서 방식은 오래도록 우리 사회가 독서에 부여한 본질이었다. 지식을 감히 자본으로 치환하는 현대 사회에서, 독서는 자본 축적과 같은 자기계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축적적 독서는 결국 또 다른 벽을 만든다. 우리는 가끔 그 벽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허위의식과 고정관념, 익숙한 해석과 단순한 유희를 주는 행위를 독서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지식의 본질에 맞지 않았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지식이 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희생되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살이, 지식을 이루었는가? 지식의 윤리는 민중친화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독서라는 행위 역시 약탈자들의 벽이 되는 것이 아닌, 약탈자들의 벽을 부수는 행위에 있다.
‘벽을 부수는 독서일기’는 그 벽을 향한 도전이다. 독서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시도, 지식의 윤리를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지식은 더 많이 쌓아 올려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기존의 벽을 허물어 무너뜨리는 데서 비로소 탄생한다. 이 길을 위한 방식이 바로 ‘파괴의 독서’이며, 여기서 축적된 의미를 해체하고 전복하는 급진적 읽기가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오랜 투사들의 전통부터 테리 이글턴, 가라타니 고진 같은 오늘날의 좌파 이론가들의 저작까지 바로 이 지점에서 독서를 움직인다. 그들은 전통적 권위에 맞서고, 사회구조에 숨은 모순을 폭로하며, 텍스트와 현실 사이의 권력관계를 뒤흔든다. 그들의 마르크스주의는 기존 텍스트의 해체와 재구성, 지식의 근본적 변혁을 향한 근원적 질문을 위해 쓰여있다.
즉, 단지 좌파 사상의 실천이 아니라, 어떻게 발본적으로 사유할 지가 ‘벽을 부수는 독서일기’의 핵심이다. 이점에서 이택광 교수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데, ‘이론은 혁실에 맞서기 위한 근육’이라는데에 동의한다. 이론의 코어에 있는 근육은 단연코 정치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이지만, 문화라는 새로운 지평에 맞서기 위해서라면 마르크스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핵심의 코어에는 마르크스주의만이 있겠지만, 새로운 담론과 이론도 받아들이려고 한다. 공식 정치라 할 수 있는 정치를 전복시키기 위한 독서, 비공식 정치인 문화를 전복시키기 위한 독서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고자 한다.
이 독서일기는 그 질문을 던지고 그 파괴의 현장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쓴다. 유희적, 축척적 책 읽기가 아니라, 읽기를 통한 해방과 전복의 실천이다. 낡고 고착된 생각의 벽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