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성좌 자리의 박탈

『근대 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 플랜비

by 꿈꾸는 곰돌이

『근대 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역, 비고, 2025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현대의 고전으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지만, 나는 여러 번 이 책 읽기를 주저해왔다. 장정일 작가의 독서일기에서 다뤄진 바 있어,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처럼 과장된 테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도피가 필요했다. 사회운동의 전위에 서 있는 활동가의 시선에서 보면, 현재의 사회운동에 문학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절실했다. 사르트르가 “현실의 혁명이 정체되었을 때, 문학은 영구혁명을 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선언은 오늘날 현실과는 정반대로 보인다. 현실의 혁명이 멈출 때 문학은 혁명을 하는 대신 방향성을 잃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학 내의 바이러스를 탓하면 쉬운 일이겠지만, 사실 이것이 정확하지도 않고 근본적 책임도 없는 진단임에도 불구하기에, 그 원인을 규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문학이 전위에 서 있지 않다고 확신한다. 정치가 개혁주의에 빠져 좌초할 때, 문학은 영구혁명을 외치기커녕 정치처럼 좌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이 싫었고, 도피처가 필요했다. 비겁하게도 이 책의 유명성에 기대 문학으로부터의 도피를 정당화하고 싶었다.


이 책의 제목은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주장은 명확하다. 문학이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근대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마쳤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 세계는 다수의 제국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 제국의 범위는 몇 개의 언어권과 일치했다. 동아시아는 한자, 유럽은 라틴어, 이슬람은 아라비아어 같은 ‘문자언어’가 강하게 자리했기에, 주변부 일반 대중들은 읽고 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제국은 지역 국가로 분절되기 시작했고, 근대 국가는 ‘언문일치’의 국어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 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 문학을 소설로 귀결시키는데, 여기에는 루카치의 영향이 느껴진다. 다만 루카치가 신을 상실한 시대의 서사시로 소설을 본 것과 달리, 가라타니는 문학이 종교도 정치도 아닌 ‘종교와 정치가 못다한 진실’을 추구해왔다고 본다. 대개 문학은 무력하고 반정치적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사실 문학은 성공한 혁명이 제도로 안착하는 것보다도 더 혁명적이다. 사르트르가 문학의 ‘영구혁명’을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이 사회적 임무나 도덕적 과제를 스스로 버린다면 그것 또한 ‘근대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가라타니는 일본뿐 아니라 유럽, 미국, 심지어 한국에서 문학의 약화를 다룬다. 경험주의적 측면이 있지만 큰 흐름에는 동의한다. 저자는 근대 문학의 상징 장르인 소설이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도덕적·사회적 위상에 근접했으나, 근대 국가가 확립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문학은 대중문화에 투항하거나 자의식에 몰두했고, 작가와 평론가는 대학과 출판계에 안주하며 사회적 공감 능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즉, 네이션=스테이트가 완성된 이후 문학은 역사적 소명을 마쳤고, 그 위상을 상실했다는 점에 동의한다.

저자의 말대로, 근대 문학의 종언했지만, 그렇다고 문학이 끝인 것은 아니다. 문학의 지위는 상실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며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의 종언’이 한국에서도 감지된다고 하면서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썼지만, 최원식의 말대로 ‘김종철을 제외하면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한겨레> 10월 27일치 19면). 이것을 근절한 ‘종언’의 문제의식을 부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15년간 한국 문학과 문학평론가는 <녹색평론>을 능가하는 사회적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 유일하게 문학계를 떠난 이는 그만이었다. 결국 이 사실은 무엇을 반증하는가?”

이 말대로, 그의 독서일기가 쓰인 지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문학은 여전히 위기 상태다. 세계적 상황은 모르겠으나, 부커상이나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신성을 상실했다. 한국 근대 국가 형성에 이바지한 문학의 신성 파괴는 슬프지도 반갑지도 않다. 다만 한병철이 우려한 바처럼, 문학의 종언이 곧 서사의 종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정보 홍수 속에서도 우회하는 서사를 다룰 새로운 형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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