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씨클로>
수레바퀴 같은 지옥의 굴레
-영화 <씨클로>
[영화평] 수레바퀴 같은 지옥의 굴래 속에서: 트란 안 홍의 <씨클로>
양조위가 내한한다는 소식을 멀찍이서, 그마저도 모니터 화면으로만 확인해야 하는 팍팍한 일상. 오히려 나는 더 깊은 어둠을 마주하는 그의 영화를 찾았다. 트란 안 홍 감독의 <씨클로>다. 이 작품은 1995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네오리얼리즘적 기법으로 베트남의 현실을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눈에 남는 건 예술적 쾌감보다도 라디오헤드의 'Creep'과 함께 흔들리던 양조위의 고독한 눈빛, 그리고 굴레에서 도무지 벗어날 길 없는 룸펜들의 절규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영화. 그러니 이러한 영화야말로 비평이란 해독제가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이 영화를 이데올로기적 비평으로 읽어내려고 한다.
1.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리얼리티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가차 없다. 할아버지와 누나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열여덟 살 소년, '씨클로'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던 인력거마저 갱단에게 빼앗긴다. 빚더미에 앉은 그는 결국 갱단의 두목이자 포주인 '시인'(양조위)의 밑에 들어가 범죄의 세계로 빠져든다. 소년의 누나 또한 시인의 소개로 매춘에 내몰린다.
이렇듯 영화는 룸펜의 세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씨클로와 그의 가족들은 노동수단조차 갖지 못한 채, 체제 바깥의 '찌꺼기'로 내몰린다. 소년이 예전에는 정직하게 씨클로를 몰고 수입의 일부를 자본가 '마님'에게 상납해야 했다면, 이제 깡패가 된 뒤에는 착취의 주체만 달라졌을 뿐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도덕 따위는 사치일 뿐이다. 살기 위해 몸을 팔고, 마약을 실으며, 때로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 삶에는 비릿한 피 냄새가 스며 있다.
2. 국가자본주의의 허상
또 하나 인상적인 지점은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을 향한 감독의 날선 시선이다. 겉으론 노동자의 나라를 내세우지만, 영화 속 호찌민시는 관료적 부패와 자본주의적 병폐가 공존하는 기묘한 장소다. 사회주의적 평등은 실종되고, 도시의 어두운 룸펜 골목에는 자본주의의 병폐만이 자리잡아있다,.
도심을 가득 메운 씨클로 행렬은 거대한 자본의 톱니바퀴처럼 쉼 없이 돌지만, 그 안에서 각자는 점점 마모돼간다. '시인'이라는 존재가 바로 이 모순의 집약체다. 그는 냉혹한 범죄를 지휘하면서도 한구석으론 시를 읊고, 사회주의적 이상이 철저히 붕괴된 도시에 남겨진 고독한 낭만주의 자폐자다. 낭만을 잃은 그의 허무주의적 방황은, 체제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인간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영화 막바지, 소년은 푸른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광기 어린 표정으로 폭주하고, 시인은 결국 스스로 불을 붙여 최후를 맞는다. 그의 죽음은, 이곳을 빠져나갈 유일한 출구가 자기 파괴뿐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남는 것은 더욱 차갑다. 비극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소년은 다시 인력거를 몰며 거리를 내달린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씨클로>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채로 가난과 착취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네오리얼리즘이 포착한 이 끈질긴 순환 속에서 양조위의 눈빛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곳은 한 줄기의 무용한 가치인 '시'조차 뿌리 내릴 수 없는 땅이고, 라디오헤드의 'Creep' 역시 시스템에서 버러지로 간주되는 룸펜들의 비명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의 탈을 쓴 사회주의가 계속되는 한, 룸펜들의 ‘씨클로’는 끝나지 않는 지옥의 바퀴를 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