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번따를 옹호하며

by 꿈꾸는 곰돌이

최근 대형 서점인 교보문고가 ‘번호따기’, 일명 ‘번따’의 명소로 입소문을 타자, 언론과 기성세대의 시선이 예민하게 곤두선 듯하다. 책에 둘러싸인 공간을 늘 신성한 지식의 전당쯤으로 여겨온 이들에게, 어딘가 ‘천박한 사교’가 스며들었다는 불쾌감이 주된 이유였다. 덩달아 일부 서점들은 독서 에티켓을 강조하며 이른바 ‘헌팅’ 현상에 선을 긋는 둣 경계에 나섰다. 하지만 서점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행위가 그렇게까지 ‘몰상식’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걸까?


이번 논란의 밑바탕엔 ‘서점에서의 헌팅’을 둘러싼 보수적인 시각이 은근히 깔려 있다. 서점의 ‘분위기’가 깨진다는 일부 주장은, 어쩌면 서점이라는 공간에 지나칠 정도로 신성을 덧씌우는 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사실 서점에 엄숙한 문화를 조장하려는 현실이 웃기다. 서점은 수도원이 아니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지성과 사회성이 교차하는 사교의 공간이었다. 카페와 서점이 맞닿은 문화살롱에서 수많은 인문적 대화와 만남이 피어났던 것이 역사가 말해준다. 책이라는 매개가 건네지는 순간, 타인의 내면 세계에 다가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지의 확장이다.


오히려 ‘서점에서의 만남’은 그 어떤 자리보다도 입체적이고 세련된 사교 형태일지 모른다. 헌팅포차나 클럽, 데이팅 앱처럼 크게 외모나 재력, 사진에 기대는 외적인 만남과 달리, 서점에선 상대가 선택한 책, 집중하는 분야, 머무는 코너의 분위기 등에서 곧바로 그 사람의 지적인 취향과 가치관을 감지하게 된다. 경제경영 코너를 스치는 순간의 인연과 시집 코너에서 나란히 책을 고르는 인연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작점부터 정보의 결이 다르다.


서점에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일은 외모 중심의 현대적 만남 방식을 넘어서는 시도이자 그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다. ‘텍스트 힙’이란 말처럼, 이젠 내가 읽는 책 자체가 곧 나의 명함이기도 하다. 그 명함을 보며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일이 ‘번따’라며 싸잡아 낮춰 말할 이유는 없다. 충동적인 욕망이나 가벼운 접근보다 훨씬 정제된 ‘취향 기반의 매칭’, 즉 하나의 지적인 구애 방식이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 세대라고 호들갑 떠는 언론 보도 속에서, 오히려 교보문고라도 헌팅의 성지로 각광받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에로스가 잔존한다는 긍정적인 신호임은 분명하다.


물론, 무례하게 거절당해도 집요하게 굴거나, 상대의 독서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태도는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서점만이 아니라, 어느 사회적 공간에서나 지켜져야 할 기본 예의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서점을 연애 금지 구역처럼 경직되게 여기려는 논리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정작 조심해야 할 것은 서점 헌팅 자체가 아니라, 그런 만남과 설렘, 곧 ‘에로스’를 억누르려는 보수주의적 시선이다. 서점은 그저 죽은 종이들의 저장소가 아니라, 오늘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는 광장이어야 한다. 만약 책장 사이에서 피어나는 호기심 어린 대화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라면, 그 수많은 책들은 그냥 먼지 쌓인 종이 더미에 불과할 터. 가장 고급스러운 사교는 언제나 지적 자극이 번지는 자리에 깃든다. 서점은 서툴러도 두근대는 그 시도들까지 품어줄 만큼 넉넉하고 열린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보다 많은 청년들이 교보문고에서 커플이 되길 지지한다. 다만 경제 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이들이 아닌, 사회과학 서적이나 시집을 읽다가 합일되는 짜릿한 경험을 경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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