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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May 02. 2023

우울증이 나아진 증거 1 _ 정리정돈과 예능인생

우울증 치료 대망의 400일


우울증 치료 대망의 400일이다.

이렇게 얇고 길게 우울증 치료를 이어갈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저 6개월이면 끝나겠거니.. 하고 치료에 임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하하. 얼마전 말을 더듬고 생각이 엉키는 증상등으로 약을 줄였었다. 그리고는 금세 그 증상은 나아졌는데 줄어든 용량에 적응을 하는 건 어려움이 좀 있었다.


무드가 약간 처져서는 모든 것에 지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비타민이 챙겨 먹고 싶어 졌다. 우울증 책을 읽다 보면 비타민 B의 중요성이 항상 대두되었는데 , 갑작스레 먹어야 할 것 같은 무의식적 흐름에 이끌려 스터디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영양소는 식품을 통해 섭취를 하자는 주의였는데 “토양영양소고갈‘이라는 현상 때문에 이제는 식품을 통한 영양의 섭취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50년 전의 사과 한 알과 , 오늘 내가 먹은 사과 한 알의 영양분은 기대치 이하라고나 할까. 그래도 여전히 자연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지만 믿져야 본전의 마음으로 종합비타민을 먹어보기로 했다. 이왕 먹는 거 흡수가 잘 되는 형태로 되어있고 용량도 적절하게 들어간 것으로 고르고 골라 아침저녁으로 몸에 때려 넣었다.

살면서 이렇게 비타민을 잘 챙겨 먹어본 것이 처음이었다.


비타민 + 아침약, 같이 먹으면 비타민 효과가 줄어든다고는 하는데 따로 먹으면 까먹고 안먹는 날이 많음.


그 와중에 아이들 둘이 장염에 걸려버렸다.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는 장염과 감기가 함께 오는 것이 유행이라더니 우리 친구들도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인지 둘이 나란히 걸려버렸다. 나름 내과 병동 짬바가 좀 돼서 어지간한 것들에는 비위가 상하는 일이 없는데 , 우리 친구들이 삼일 밤낮으로 위아래로 쏟아지는 것들을 정신없이 치우다 보니 이건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었다. 오랜만에 비위도 좀 상해버리고 폭삭 늙는 기분이었다. 나도 밥은 아니더라도 뭐라도 먹어야 친구들을 돌봐줄 수 있으련만 울렁거리는 속이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위장약과 두통약을 계속 먹어가며 며칠을 버텨냈다.



이 전에는 이런 날들이 거듭 될 때면 다큐 100%의 마음으로 ”아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싶다. 살아서 뭐 하나 “ 싶었는데 지금은 예능에 다큐 한 스푼의 느낌이랄까.


애들 장염케어를 잘했다며 스스로 만족스러워서 애들을 재우고 피자한판을 시켜 절반이나 삼켜버리고 만족스러운 배를 두들기며 자려고 방으로 들어갔더니 큰 친구가 이불에 토해놓고 그위에서 한 바퀴 뒹굴고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진짜 와..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제일 먼저 한 일은 다시 비위가 상하기 시작해서 소화제를 두 알 삼키고 그 야밤에 아이를 깨워 목욕을 시켜 옷을 갈아입히고 괜찮다고 다독여서 재웠다. 이불빨래는 말해 뭐 해. 이불을 3개나 발로 밟았다. 힘들기는 오지게 힘들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토해놓은 아이를 보며 어찌나 헛웃음이 나던지 ㅋㅋㅋ..



또 그 와중에 집 정리를 시작했다.

스트레스는 본디 청소와 정리로 풀어야 하는 게 정석 아닌가? 아닌가.. 껄껄. 우울증이 있을 무렵에는 청소를 해도 눈앞에 있는 것들을 깨작거리는 정도였다. 아무리 뒤집어도 뭔가 시원찮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싹 뒤집고 탈탈 털어서 분류하고 버릴 것들을 버리고 제 자리를 찾아주었다. 고객님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앞베란다를 싹 치워놓으니 설거지하며 산이 보여서 남편도 좋아하고 (?) ㅎㅎ 아이들도 ‘우와’라며 연신 감탄을 뱉어주었다.


(좌) 끝없이 나오는 분리수거  (우) 설거지뷰



나도 속이 시원하기는 하다. 아픈 아이들 돌보며 내 몸도 너덜거리는 와중에 청소까지 했다. 이 정도면 약을 줄였어도 괜찮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시기적절하게 먹기 시작한 비타민 덕분인지 몰라도 확실히 전보다 체력도 좀 나아진 것 같았다.


병원에 가던 날이었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선생님은

”아 웃어서 죄송해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힘드셨을 텐데 ㅋㅋㅋㅋ“ 라며 장염 걸린 아이들은 이제 괜찮아졌는지 안부를 물어 주셨다.


그래 정말 난 이제 예능과 다큐가 적절히 섞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종합비타민을 먹기 시작한 것도 칭찬을 받았다. 아무래도 체력이 좀 나아지면 우울감이 나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정돈이 잘 되어가는 집을 바라보며 ,

정돈되어가는 나의 정신머리를 다독여본다.

이제 괜찮아질 것 같다고. 정말 이제 이번 우울에피소드가 곧 끝날 것 같다고.


선생님도 ,

이 정도면 약을 하나 더 줄여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나 줄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번 3주는 그대로 약을 먹어보고 다시 3주 뒤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하셨다.


장하다. 맹수봉

정말 이러다 나 단약 하는 거 아니야? 어허허


복용 중인 약 : 폭세틴 캡슐 10mg , 에스벤 서방정 50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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