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들었던 가장 어처구니없는 말을 꼽자면,
“다음에는 웃으면서 화내면 안 될까?”
의미인즉, 화내는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었으니 다음에는 웃으면서 말해달라는 것.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략 두 가지이다. 첫째, 화가 나는데 어떻게 웃는 게 가능한가. 둘째, 나는 애초에 화를 낸 적이 없는데 왜 ‘다음에 화낼 때’라고 말하는가. 요즘 나는 적정한 선에서 화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또 최근 자주 듣는 말로는 이런 것도 있다.
“왜 자꾸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해?”
말다툼을 할 때, 내 입장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말하면 상대는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너는 왜 그렇게 나를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느냐, 왜 상황을 그렇게 안 좋게만 받아들이느냐, 화가 난다고 그렇게 나쁜 식으로 사람을 몰아가면 되느냐.
문제는 대게 말싸움이라는 게 1대 1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누구의 말이 좀 더 사실에 가까운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각자의 판단은 주관적이다. 내가 정말 사실 이상으로 나쁘게 상대방에 대해서 말했나? 물론 의도와 무관하게 상대방이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내 잘못이 맞겠지만 의미를 확대해석해서 필요 이상으로 상처받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잔인하지만 사실이다. 아, 이런 말에도 상처를 받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정한 선에서 화내는 방법에 대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잣대는 항상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자기 의견을 피력할 때도 우아하게 해야 하며, 타인에게 충고할 때도 되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말해야 한다. 직장에서 만난 경우라면 더욱더. 화를 내면서 소모되는 감정 또한 피로하다. 애초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부러울 정도로. 어떻게 하면 내 감정이 상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시키고 동시에 상대방의 기분도 보전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화를 내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렇다. 지나치게 섭섭하거나 억울한 일이 있었을 때 혹은 배신의 감정을 느꼈을 때 억누르기 힘든 분노가 차오른다. 차마 발화되지 않고는 사라지지 않을 말들이 가슴속에 기하급수적으로 고이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면 화가 난 이유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고, 상대방의 반박이 화에 불을 붙인다. 그러면 감정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다. 이때 화내지 않고 되려 침착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애초에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화를 내는 사람과 내지 않는 사람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을까.
수많은 고찰과 일기장에 버리듯 써둔 자기 고백 혹은 반성들을 통해 처음 내린 결론은 이해였다. 오랜 시간 그들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대화를 나눈 끝에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갖춰진다면 화가 나지 않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이해하려고, 정말 무던히도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해했다고 여긴 순간에도 다음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여지없이 비슷한 화가 올라왔다. 오히려 잦은 다툼 속에서 더 날카로워지기만 했고, 한 인간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오만인 것 같았다.
누군가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면, 타고나길 타인에 관한 이해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면.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아마 인정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틀렸다는 걸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은 내가 틀렸고 다른 사람들이 다 맞았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비겁한 자기 위로를 가장한 자기 만족이 아닌 진정한 자기 부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매번 붙같이 화내는 대신 온화해지고 싶다. 요즘 진정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