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학번의 고충 일기
“아니 누가 대학생 때, MT를 한번 못 가봐~ ㅋㅋ”
ㄴ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누’입니다.”
하하하. 나는 MT를 가본 적이 없다. MT가 뭐죠? 멘토스인가요? 네? CC요? 코카콜라의 줄임말인가요? 그렇다. 위기의 코로나. 그 시절 나는 희망에 가득 찬 대학교 1학년 새내기였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만 해서, 열심히 살도 빼고 염색도 맛깔나게 해 놨는데. 등교 금지라니. 흑. 처음에는 한 3주면 풀릴 줄 알았다. 에이~ 설마 그래도 1년 동안 대학교 한 번을 못 가겠어? … 그랬다. 한 번 갔다. 에이씨 말이라도 한 서너 번을 못 가겠어? 그럴걸. 코로나 이 새끼 때문에 내 대학 시절의 로망은 조용히 우리 집 ‘쪼꼬’에게 줘버리고 말았다. 왈왈!!!!
대학생 1학년 나의 세상은 작은 노트북 화면, 그게 전부였다. 여러모로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사람을 만날 때의 순서는 대개 ‘얼굴-통성명-성격’이 아니던가. 우리는 ‘통성명-성격-얼굴’의 순으로 만남을 시작했다. 목소리를 듣고, 화면 속 작은 얼굴을 마주하고, 어렵게 만났다. 대학 시절 친구가 가장 오래간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은데…. 친구 한 명 사귀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판단 체계가 흐려졌다. 일단 재밌으면 친구! 취향이 비슷하면 친구! 그렇게 베스트 프랜드를 만들어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해왔던 무리 만들기가 너무 익숙했던 나머지, 너무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말았다. 우리의 우정은 단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물에 젖은 모래성이었다. 파도 한 번에 깔끔히 싹- 밀려가 버리더라. 에라이.
서두른 관계는 쉽게 깨지기 마련이다. 얄팍했던 우정은 미련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렇게 홀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혼자 수업 듣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카페를 가고, 혼자 영화 보고. 그 누구 맞춰줄 필요 없이 내 입맛대로 놀았다. 그러다 보니, 내 취향을 알게 됐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고, 창문이 큰 카페를 좋아하며, 마블 영화를 즐겨보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놀고, 핫플을 찾아가고,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타인의 취향이었다. 나는 그저 맞춰주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알게 된 건, 정말 큰 행복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다 보니, 작지만 견고한 무리가 생겼다.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지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주 건강한 관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겪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이 많다. 만약, 누군가 코로나가 없었던 새내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기회를 준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정말로!
2년의 코로나 지배기가 끝나자, 나는 선배가 되어 있었다. 학식을 먹어본 적도 없고, 학교의 지름길도 모르는 선배. 말 그대로의 ‘헌내기’였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고. MT를 가보지 않았지만, 학생회장이 되어 MT를 이끌었고, 행사를 즐겨본 적도 없지만, 행사를 주최했다. 하하하.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내겐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렇게 일궈냈다. 뭐? 학생회장 정도는 누구나 되는 거 아니냐고? 이놈 보게! 나 때는 말이야~ 뭐 인수인계? 그런 거 없었다? 혼자 알아서 살아남는 거여~ 혼자 살아남는 놈들이 독한 법. 나는야 코로나 시절 홀로 살아남은 똑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