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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Mar 25. 2024

비엔나커피.뉴욕커피상점.겸손

"나 여기 있다!"

"뭐야! 언제 왔어?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도 아내의 요가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다. 아침밥 보다 아침잠을 좋아하지만 40대가 되면서 생존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요가원 까지는 걸어서 10분쯤 걸린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번갈아 있어서 잠 깨우기 운동으로 적당하다. 내가 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던 아내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얼굴이 환해졌다.



"나온 김에 커피나 마시고 갈까?"

"그래. 나 비엔나커피 먹고 싶어."

"그럼 뉴욕에 가자."


 우리는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뉴욕으로 갔다. 강릉 안의 뉴욕. 흔히들 뉴욕커피라 부르는, 정식명칭은 뉴욕커피상점인 사장님 한분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다. 사장님이 원두를 볶는 날이면 거리 가득 고소한 향이 흘러 다닌다. 커피에 진심인 곳이라 맛없는 커피가 없지만 특히 비엔나커피가 맛있다. 비엔나커피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넣고 그 위에 차가운 하얀 크림을 올린 커피다. 온탕과 냉탕, 쓴맛과 단맛을 오가는 재밌는 맛을 가졌다. 다른 지역에 가서도 비엔나커피가 보이면 마셔보곤 하는데 우리 입맛에는 뉴욕커피가 제일 맛있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이 같이 어디 갔다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운동하고 오다가 들렀어요."

"비엔나커피로 두 잔 부탁드려요."


 우리는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따뜻한 비엔나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사장님은 빠르게 커피를 내리며 크림을 치기 시작하셨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휘핑기를 쓰지 않고 직접 치신다. 손이 워낙 빠르셔서 금방 맛있는 커피를 가져다주셨다. 역시 맛있다. 다른 카페의 크림과는 맛이 다르다. 이건 직접 먹어봐야 아는 맛이다. 잠을 줄이고 나오길 잘했다. 사장님은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기계 세척과 주변정리를 시작하셨다.


 뉴욕커피 사장님은 커피 전문가에 대한 묘사를 현실로 옮겨둔 사람 같다. 그럼에도 말속에 자신을 뽐내는 법이 없다. 커피 외의 것에는 별로 신경을 두지 않고 늘 겸손하시다. '카페는 감성이고, 힙한 인테리어와 맛있는 디저트지!' 따위는 뉴욕커피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딱한 사람도 아니다. 보통은 수줍은 모습으로 있다가 커피나 영화, 공연과 미술을 얘기할 때는 힘 있고 유창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재밌는 사람이다.

 요즘은 자신이 가진 30%의 능력을 90%인 듯 어필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TV나 SNS 속에는 비슷한 정보와 인사이트를 가공해 전달하면서 스스로를 전문가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 역시 가진 능력에 비해 많은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품고 산다. 뉴욕커피에 오면 그런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진짜 실력을 가진 사람이 보여주는 겸손함을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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