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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Mar 29. 2024

파도와 서퍼 그리고 쌀국수

"내일 쌀국수 먹으러 가자."

"안 자니?"


 어젯밤, 출근을 위해 그만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출출했다. 뇌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냥 자자 해도 음식 생각이 났다. 그중에서도 베트남 쌀국수가 먹고 싶어졌다. 막 잠들어 가고 있는 사람에게 내일 점심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알았으니까 그만 자라고 했다.

 


"포군 다시 영업 시작했어!"

"엄청 오랜만이다."


 쌀국수를 먹으러 갈 생각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때마침 포군도 돌아왔다. 나와 아내는 둘 다 포군의 쌀국수를 좋아한다. 포군은 양양 남애항 근처에 있는 작은 쌀국수전문점인데 집에서 일부러 갈만한 거리 안에서는 가장 맛있는 곳이다. 차로 30분이 걸리지만. 먹고 나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는 빨리 갈 수 있는 내륙길은 제쳐두고 바닷길로 돌아 올라갔다. 푸른 바다를 보며 천천히 드라이브하는 과정 까지가 포군을 즐기는 우리만의 의식이다. 오후 2시가 다되어 드디어 포군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쌀국수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두 팀이나 있었다. 키오스크에서 소고기쌀국수를 주문했다. 기본은 고수가 들어 있지 않아서 고수와 숙주를 추가했다. 우리는 익숙하게 셀프코너로 가 절인양파와 단무지를 가져다 놓고 자리에 앉았다. 큰 창 밖으로 보이는 남애 바다가 아름다웠다. 바람이 좀 있는 날이라 서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긴 보드에 앉아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긴 의자에 앉아 쌀국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군은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사장님은 매년 겨울이 오면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나버린다. 세 달 정도 푹 쉬고 돌아와 다시 장사를 하신다. 재충전을 하고 오셔서 계속 맛있는 음식을 만드시는 거겠지만, 사장님의 쌀국수를 기다려야 할 나에게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쌀국수를 먹으로 속초까지 가야 했었다.


 마침내 소고기쌀국수가 나왔다. 맑은 국물을 먼저 맛보고 추가한 고수를 집어넣었다. 쌀국수에는 차돌양지가 가득 올려져 있다. 나는 냄새에 예민해서 물에 있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긴 잡내가 없고 부드러워서 좋다. 포군 쌀국수의 맛이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평범한 쌀국수 같은데 이렇게 또 찾아오게 되는 매력이 있다.



"와 배불러."

"나도. 여전히 맛있다."


 우리는 정신없이 쌀국수를 먹었다. 기다림은 3개월이었지만 먹는 건 딱 15분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포군이 변했으면 어쩌나, 그럼 우리는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쓸데없는 걱정 했었다. 사장님도 전처럼 밝고 친절하셨다. 장사는 언제나 피곤하지만 늘 목소리에 힘이 있다. 이번 겨울도 잘 지내고 오셨나 보다. 다시 겨울이 오기 전까지 부지런히 쌀국수를 먹어야겠다. 겨울이 오면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남애의 서퍼들처럼 나도 기꺼이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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