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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pr 19. 2024

필명을 짓다

 필명을 지었다. 이름을 그대로 쓰자니 글이 솔직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자신이 없으니 이름을 쓰는 게 부끄러웠다. 누가 보든 백지에서 내 글을 마주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계속 글을 쓰려면 필명이 필요했다. 쓰는 사람의 이름인 필명(筆名)이 내게는 쓰는데 필요한 이름 필명(必名)이 되었다.


 일주일을 고민했다. 아내와 장난을 치며 온갖 말도 안 되는 이름들을 떠올렸었다. 오가와 이토를 좋아한다고 오가와식.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을 붙여 김벼리. 덧니가 많은 사람이라고 김덧니. 좋아하는 과일과 음식을 더해 바나나커리... 아내는 남의 이름이라고 혼자 신나 있었다.


 오늘도 해가질 때까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필명을 만들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밀리에서 책을 마구 찍어먹어 보기를 좋아한다. 이 책 저책을 열어 조금씩 읽어보다가 한 단어에서 눈이 멈췄다. 평소 많이 쓰고 있던 단어였는데 왜 생각을 못했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이 단어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 국어사전을 찾았다. 발음하기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상관없었다. 단어가 가진 의미가 한참 동안 마음을 울렸다.


"안위"


 안위의 한자는 두 가지가 있다. 안위(安危)와 안위(安慰)다.


 첫 번째 안위(安危)는 '편안함과 위태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한 단어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하는 삶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있지만, 늘 현실의 위태함에 흔들리고 있었다.


 두 번째 안위(安慰)는 '몸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함'이다. 내가 글쓰기에서 얻고 있는 행복이자 오래도록 지향하고 있는 내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생활이 조금 규칙적으로 변했고, 주변을 바라보는 태도가 밝아졌다. 실패의 경험을 돌아보며 자신을 위로했고, 마음을 살피며 위안을 얻었다.


 안위는 나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담고 있는 완전한 단어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제와 다를 게 없는 나지만 스스로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의 바람이 지어준 본래 이름과 남은 생을 함께 살아갈 나의 바람이 손을 잡았다. 오늘부터 나는 안위다. 안위의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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