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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영기 May 26. 2016

10_1947년 화폐개혁의 성과

북한의 화폐와 수령

화폐개혁의 결과통화량은 극적으로 감소했다주민들 사이에 퇴장되어 있던 유휴화폐는 공적인 영역으로 환수되었다교환 한도의 설정과 차별적 예금인출이 낳은 결과였다유통화폐는 1948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화폐교환 전보다 67% 감소했다유통 화폐량 저하는 물가하락으로 이어졌다.

“1947년 인민경제계획을 완수하고 화페개혁을 실시함으로써 로동자, 사무원들의 생활은 급속히 향상되였습니다. 실례로 량곡의 시장가격은 1947년 1월에 비하여 12월에 평균 27%나 저하되였습니다. 이와 같은 간단한 실례에서도 우리 당 로선의 정당성을 알 수 있습니다.” 김일성, “당중앙위원회사업에 대하여”(1948.2.21), 『김일성저작집 4』(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p. 146.

화폐개혁 전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은 치유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공산품을 중심으로 물가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공급 증가가 따르지 않는, 통화량 감소만을 통한 물가하락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다.

1947년 화폐개혁 이후 평균 시장 물가 하락률

※ 출처 : 전현수, “1947년 12월 북한의 화폐개혁”,『역사와 현실』(한국 역사연구회, 1996), p. 211.


북한의 연구자들은 화폐개혁의 위상을 ‘민주개혁’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일 화폐제도를 수립하고 자주적 재정금융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물가를 잡아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고무적으로 높였던 계기로 화폐개혁을 꼽고 있다. ‘8ㆍ15 해방 3주년 기념 평양시 경축대회에서 한 보고’에서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1947년말에 실시한 화페개혁을 통하여 식료품의 가격은 20∼40% 낮아졌으며 우리는 얼마 전에 또다시 전반적인 상품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였습니다. 이것은 로동자, 사무원들을 비롯한 인민들의 물질문화 생활수준을 더한층 향상시켰습니다. 인민들의 물질문화 생활수준이 향상되였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업 복구를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함으로써 북조선에서는 실업자가 완전히 없어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로동력의 부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로동자, 사무원들은 지난날 일제가 소유하였던 주택과 건물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들의 로임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페개혁과 물가 인하를 통하여 상품의 가격이 대폭적으로 낮아진 사실을 고려한다면 로동자, 사무원들의 실질로임은 훨씬 더 높아진 것으로 됩니다.” 김일성, “8.15해방 3주년 기념 평양시 경축대회에서 한 보고”(1948.8.14), 『김일성저작집 4』(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pp. 411~412.


북한의 연구자들은 토지개혁산업국유화에 이은 화폐개혁으로 노동자와 농민들이 지주와 친일세력의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었음을 강조한다. 사실, 화폐개혁으로 식민지의 흔적을 지우고 통화주권을 확보한 것은 의미 있는 조치였다. 1947년 12월은 토지개혁을 시작으로 전개된 민주개혁의 정점이 되었다북조선 중앙은행은 북한 전역에서 유일한 발권은행이 되었다또한 발행되는 화폐는 강제통용력을 가진 법화가 되었다공화국 유일 화폐의 성립은 김일성에게 더욱 공고한 기반이 더해짐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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