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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ug 27. 2023

일본 문학사상 최고의 서정 소설 -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민음사, 2009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첫 문장부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프랑스 파리 일간지 '르 몽드'는 《설국》이 "문체의 아름다움에 있어 대표적인 고전"이며, "이미 다 읽고도 다시 읽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시적이면서 우아한 문체의 풍요로움 때문"이라고 평한다. 말 그대로, 필사의 충동을 일으키는 문장의 연속이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선정하며 "일본인의 마음의 정수(精髓)를 빼어난 감수성으로 표현하는 서술의 능숙함"을 꼽을 만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89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와 조부모를 떠나보내고 이로 인해 생겨난 허무와 고독, 죽음에 대한 집착이 평생 그의 작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1937년 설국을 출간해 독보적인 일본 작가로 국내외에서 자리매김했으며, 《천우학과 산소리》 《잠자는 미녀》 《고도》 등의 대표작으로 독자적인 서정 문학의 장을 열었다. 1968년에 그간의 작품 활동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 외에도 괴테 메달,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일본 문화훈장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설국》은 눈의 고장 니가타 현의 온천 마을을 배경으로 시마무라, 고마코, 요코 세 사람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그린다.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가 니가타 현에 여행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곳에는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여자 고마코가 게이샤로 일한다. 그리고 사랑에 온몸을 던지는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 요코를 만나 두 여자에게 동시에 끌린다. 하지만 통속적인 연애소설은 아니다. 명확한 줄거리가 없는데도 인물의 심리와 풍경 묘사가 빼어나고 자연과 인간, 정열과 허무의 세계를 줄곧 대비시킨다.



자신도 모르게 늘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던 탓에, 발목 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다소 소질은 있다 하더라도 복잡한 곡을 악보로 독학해서 악보를 보지 않고서도 자유자재로 켤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강한 의지로 노력을 거듭했음에 틀림없다.
시마무라에겐 덧없는 헛수고로 여겨지고 먼 동경이라고 애틋해지기도 하는 고마코의 삶의 자세가 그녀 자신에게는 가치로서 꿋꿋하게 발목 소리에 넘쳐나는 것이리라.(p.65)



시마무라는 "열아홉이나 스무 살 먹은 시골 게이샤의 샤미센쯤이야 들어보나 마나 뻔하다"(p.64)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발목(撥木) 소리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그는 "아아, 이 여자는 내게 반했군"(p.64) 혼자 생각 고마코가 왠지 처량하다고 느낀다.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했을 고마코의 습관을 추측하면서도 덧없는 '헛수고'로 여긴다. 허무와 공허의 세계에 사로잡힌 시마무라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두 여인을 통해 마치 눈이 쌓이듯 서서히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설국》은 일본 문학사상 최고의 서정 소설이다. 눈 덮인 니가타 지방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해 동양적 미의 정수를 보여준다. 자연에 대한 서정적인 묘사와 인간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명확한 줄거리가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읽는 이에 따라 모호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작품 속에 담긴 허무와 고독, 죽음의 세계 또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끼게 하는 반면 마음을 침잠시킬 수도 있다. 이 책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 답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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