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돌의 책 글 여행 Dec 22. 2021

나는 자유의지로 살고 있는가

<양을 쫓는 모험>,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2019


내 꿈(dream)은 뭐지? 모르겠다. 꿈은 꼭 있어야 하나? 어릴 적엔 그냥 적었다. 빈칸인 채로 둘 수 없어서 선. 생. 님.이라고 썼다. 눈앞에 서 있는 그럴듯한 역할 모델이 '선생님'이었다. 그러다가 책 속의 다양한 세계를 접하며 '작가'를 꿈꾸었다.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배고프고 고달 보였다. 성인이 되어 좋아하는 일과 돈을 버는 일 사이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며 살았다. 꿈꾸는 대신 꿈을 이루어줄 '도구'를 쫒았다. 쉽게, 꿈은 곧 도구가 되었다. 책모임에서 <양을 는 모험>(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2021)을 읽으며 한때 내가 '꿈'이라고 생각하며 쫓았던 '도구'의 실체를 떠올렸다.




<양을 는 모험>은 주인공 '나'가 '양'의 실체를 쫓아 무모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친구와 광고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주인공 '나'는 어느 날 광고 사진으로 올린 목초지 풍경 사진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인다. 거물급 인사의 비서로부터 두 달 안에 사진 속 '양'을 찾아오지 않으면 소중한 것을 빼앗겠다고 협박받는다. 주인공 '나'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맞서지만, 결국 '양'의 실체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


'양'은 양인데 말 그대로 ''이 아니다. 관념이고 가치이고 그 무엇일 수도 있는 것들이다. 나는 한때 상당히 긴 세월, 물질을 으며 살았다. 처음엔 내 의지로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나의 자유의지가 살아 있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잡으려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져 갔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 진짜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한동안 내 몸을 바라보았다. 특별히 이상한 데는 없었다. 나는 나였고, 항상 짓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내가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고 있다기보다는, 마치 내가 거울에 비친 영상이고, 영상으로서의 밋밋한 내가 진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오른손을 얼굴 앞으로 가져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쳐보았다. 거울 속의 나도 똑같은 동작을 취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울 속의 내가 한 짓을 내가 되풀이한 건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는 내가 진짜로 자유의지를 갖고 손등으로 입가를 훔친 건지 아닌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하, 214쪽)


수없이 많은 순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생소할 때가 있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거울 속의 내 얼굴이 있다. 결혼하고 8개월 된 아이 엄마로 살아가던 때였다. 나와 남편이 가정의 주체로 우리만의 삶을 꾸려가던 다.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내가 없는 '나'를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표정이 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그 무언가를 기 시작했다.


무엇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날들이 있다. 나는 때때로 그런 순간들 속에서 거울 속의 '나'를 곳곳에서 마주한다. 스마트폰 액정화면 속에서, 화장대 거울 앞에서, 화장실 거울 너머로, 낯선 '나'를 만난다. 거울 속의 나는 말없이 묻는다. '넌 누구?' '너는 지금 무엇을 쫒고 있지?' 양을 는 모험이 끝나고 평범한 일상, 삶이 있는 세계, 사람들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주인공 '나'처럼 현실 속의 '나'도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삶에 안착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선택을 해도 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