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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Apr 14. 2020

왜 우리는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에 빠져들까?

오늘 질문을 받았다. "왜 너는 하트시그널 열심히 보냐"라고 말이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아 봤는데 나름의 철학적 고민을 했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가기 보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는게 더 쉬운 접근 방법인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썸이던, 연애던 많은 상담을 해준다. 당연히 사람들이 나의 의견을 신뢰하는 이유는 내가 인문학과를 나와서일 가능성이 높다. 인문학과에서 배우는 것은 사람 존재에 대해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과에서 책을 읽을 때 배우는 것은 주인공의 삶의 배경, 말하는 방법, 사용하는 언어 등등을 분석해서 주인공과 인물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다. 그런 즉, 인문학과 출신 중에서 나름 책을 많이 읽고 서평을 많이 쓴 사람들의 경우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패턴에 대해 나름 객관적으로 분석을 할 수 있다. 내가 연애 상담이던 뭐든 간에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이성적이며, 객관적으로 분석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애 상담을 하다보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뻔해 보이는 결과가 당사자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도대체 상담을 해주는 '나'와 당사자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연애 상담을 받으려는 이와 나의 차이점은 매우 간단하다. 내가 객관적인 판단을 하며 판을 쉽게 읽는 이유는 내가 연애 게임에 선수로 뚜지 않고 관전자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나 또한 아무리 판을 잘 읽는다고 해도 내가 선수가 되어 뛴다면 나 또한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으로 도대체 사람들은 연애 게임에서 선수로 뛸 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할까?


우리가 객관적으로 우리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 또한 아주 상식적인 답이 나온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 자신이 언제나 밝은 미래가 있고 행복하길 원하기 때문에 당연히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때는 당연히 절실하고 장기중심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즉,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라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나의 삶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나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이런 자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하트시그널>과 같은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트시그널>의  주인공들은 모두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각자의 사랑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 방식을 밀고 나간다. 그러면서,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사랑이 성취되기도 한다. 그런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런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을 볼 때 우리는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참여자들의 행동과 말투 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각자의 참여자들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에 열광을 하는 것이다. 즉, 남의 연애 얘기가 제일 재밌다는 속설이 있듯이, 이성적인 판단으로 판을 읽으면서 동시에 대상에게 나의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공감을 하는 심리상태가 기인한 것은 아닌가 한다. 


P.S. 요즘 나는 나의 전공과 매일 먼 글만 쓰고 있는데, 아무리봐도 나는 과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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