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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Oct 04. 2020

<사이코 패스> 악법 앞에서 이상적 시민이란 ?

<사이코 패스> 리뷰


시빌라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


  미래 일본은 시빌라 시스템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시발리 시스템은 CCTV 등을 통해 모든 시민의 심리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그 수치를 통해 사람의 정보를 정리한다. 이 수치는 사이코 패스(PyschoPass)라고 한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시빌라 시스템은 심리상태 수치에 기반하여 법죄계수를 측정하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잠재범을 사전에 격리시켜 버린다. 시빌라 시스템은 각각의 개인의 직업적성, 소득, 복리후생을 시스템이 지정해 실업률을 최대한 감소시키며 직업의 빈부격차가 없는 세상을 만든다. 또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범을 즉결처불하거나 수용소에 구금함으로써 사회를 유지한다. 일본 사회에서 시빌라 시스템을 신뢰하는 이유는 바로 '객관성' 때문이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은 바로 한치의 오차가 없는 시빌라 시스템이 기계의 정확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민들은 사회에서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스트레스를 의도적으로 감소시키며 사회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간다. 일례로, 시빌라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음악활동은 금지되어 있다. 음악이 인간을 감정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시빌라 시스템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빌라 시스템의 신화였다. 시민들이 시빌라 시스템을 기계로 믿지만 실상은 247명의 인간의 뇌를 적출해 이를 병렬화하고 고속화시켜 만든 단일 시스템이다. 문제는 247개의 뇌는 각자의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개별체이자 동시에 하나인 시스템이다. 이것은 시빌라 시스템의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시민들이 시빌라 시스템을 믿는 이유는 객관성 때문이다. 그러나 시빌라 시스템은 '자의적 판단'을 하는 시스템이다. '자의적 판단'을 한다는 것은 사회가 이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며, 소수의 개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공익으로 생각하는 사회다. 시빌라 시스템은 겉으로 보기에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회지만 내부에는 소수의 자의적 결정으로 지배되는 독재사회다.



시빌라 시스템을 구축한 벤담, 조지 오웰 그리고 미쉘 푸코


 시빌라 시스템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그 뿌리는 벤담의 <파놉티콘>, 뮈쉘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리고 조지 오웰의 <1984>에 철학적 뿌리를 두고 있다. 먼저 벤담은 공리주의의 아버지다. 그가 말한 공리주의는 합리성이며 이는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하다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벤담은 <파놉티콘>에서 감시체제를 효율적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감시탑을 수직으로 높게 짓고 간수는 한 명 감시탑에 배치된다. 그리고, 죄수가 수감된 감옥들은 원형으로 만들어져 간수는 모든 간수들을 감시할 수 있다. 간수는 수감자들을 모두 볼 수 있지만 수감자들은 간수를 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간수가 자신을 끊임없이 감시한다고 생각하며 수감자 자체가 자신을 감시하는 사태를 발생시킨다. 이처럼, 벤담의 파놉티콘은 현실화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모두 들어와있다. 우리는 언제나 효율성을 중시하며 모든 것을 수치화시켜 생각을 하려고 한다. 벤담의 공리주의적 개념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는 사고인 동시에 시빌라 시스템을 지지하는 핵심 개념이다. 시빌라 시스템에서 인간의 감정이나 범죄계수를 수치화해서 만드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미쉘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사회는 인간을 길들이기 위해 규율을 만든다. 학교, 군대, 감옥에서 규율에 따른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규칙을 따르며 그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체계를 따른다. 그러는 동시에 서로를 감시하며 종국에는 자기자신이 자신을 검열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시빌라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유는 시빌라 시스템의 막강한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민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서로를 감시하며 시빌라 시스템이 요구하는 규율을 몸에 체화시켰으며 시빌라 시스템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즉, 시빌라 시스템은 수많은 시민들의 믿음과 복종 속에 세워진 권력이다. 마지막으로 <1984>의 빅브라더와 시빌라 시스템은 닮아있다. 벤담의 <파놉티콘>이 시빌라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사회를 보여주었고, <감시와 처벌>은 시빌라 시스템의 감시구조와 권력이 유지되는 방법의 모태가 되었다면 <1984>는 시빌라 시스템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1984>의 빅브라더는 수많은 당원들의 집합체이다. 개개인의 개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전체가 하나이다. 시빌라 시스템도 247명의 뇌가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개개인보다 전체주의적 마인드가 깔려있다. 전체주의적 사회에서 개인은 공동체를 위해 희생당하며 개인은 사회가 돌아가게 만드는 부속품일 뿐이다. 이처럼 시빌라 시스템은 겉으로 보기에 유토피아적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은 전체주의적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순적인 사회다.


시빌라 시스템에 대한 저항


 <사이코 패스> 1기의 적 마키시마 쇼고와 2기의 적 카무이 키리토는 시빌라 시스템에 대해 저항하는 인물이다. 마키시마 쇼고는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며 시빌라 시스템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마키시마 쇼고는 일종의 사회 자체를 무너트리려고 한다. 마키시마 쇼고의 혁명적 사고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빌라 시스템이 나름의 부조리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시빌라 시스템을 대체할 대안 자체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즉, 마시키마 쇼고가 시빌라 시스템을 무너트린 사회가 기존의 시빌라 시스템이 통치하던 시기보다 낫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 그에 비해, 카무이 키리토는 사회 자체를 파괴하기 보다는 시빌라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고 한다. 마키시마 쇼고와 카무이 키리토의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점을 하나 뽑자면 그것은 바로 시빌라 시스템의 모순을 보여주면서 시빌라 시스템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들의 계획이 근대 국가 이전의 왕과 같은 권력에는 통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회를 유지하는 리더격의 인물을 제거하면 사회는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국가는 권력자가 존재하지만 그 권력을 유지시키는 것은 그 권력을 재생산하는 시민들의 미시권력이 존재하는한 시빌라 시스템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카시마 쇼고는 사회전체를 부셔버릴려고 했고, 카무이 키리토는 시빌라 시스템을 파괴하려 하지만 마지막에 단념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은 시빌라 시스템을 유지하는 시민들의 존재 여부가 사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츠네모리 아카네가 보여준 법의 정신


 시빌라 시스템 특히 근대 국가는 혁명적 사건으로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시빌라 시스템을 종국적으로 변화시킬 것은 바로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법의 정신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사이코 패스>에서는 츠네모리 아카네와 시모츠키 미카라는 두 명의 시민을 대변하는 인물이 나온다. 시모츠키 미카는 우리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시모츠키 미카는 시빌라 시스템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 시스템의 문제를 눈감고 시빌라 시스템에 대한 무한한 복종을 맹세한다. 그 이유는 시빌라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 권력에 질문을 하는 것은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우리는 사회문제에 대해 대중에게 말을 할 때 '소신발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어떻게 보면 사회적 불이익까지 감수를 해야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시모츠키 미카처럼 법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눈을 감고 사회에 순응한다. 그에 비해, 츠네모리 아카네는 근대 국가의 이상적 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츠네모리 아카네는 시빌라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시빌라 시스템가 부여한 법을 어기지 않는다. 즉, 츠네모리 아카네는 법을 준수하지만 잘못된 것에 대해서 자신의 사고를 가지고 비판을 한다. 시민의 덕목은 바로 생각하는 힘인 이성과 윤리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법이라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저 요건만을 보장한다. 더 발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윤리적 측면이 필요하다. 윤리적 측면이 필요한 것은 불법이 아닌 상태에서 이 사회에는 수많은 꼼수가 존재한다. 법을 어기지 않지만 수많은 꼼수가 쌓이면 사회는 무너지게 된다. 즉,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은 바로 법과 함께 윤리의 영역이다. 이 윤리의 영역을 세우는 것은 바로 이성에 바탕을 둔 이성적 사고다. 츠네모리 아카네가 보여준 이상적 시민의 모습은 비록 악법이더라도 이를 준수하지만 그와 동시에 악법에 대해 비판하며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어지럽다. 지금 우리 사회의 권력은 어쩌면 시빌라 시스템처럼 변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많은 시민이 생각을 권력에게 맡기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시민 한 명, 한 명이 법을 준수하며, 윤리적 기준에 따라 법을 바라보며,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목소리를 외치는 것이 법치국가의 시민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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