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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Dec 30. 2020

Flex나라의 나사빠진 엘리스들

중산층의 과시소비에 관하여

 최근 예능의 트렌드는 연예인들의 삶을 관찰하며 그들의 소비행태 및 과시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연예인들의 일상은 대부분 부의 과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많은 수의 시청자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부를 과시하는 예능의 트렌드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부의 과시라는 것은 비단 공중파 방송의 연예인에게 한정되는 현상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소비행태를 과시하며 Flex한 삶을 전시한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음식, 여행, 카페, 상품, 몸매 등을 끊임없이 업로드하고 게시물에 '#일상'을 붙이며 자신의 과시적 속성을 일상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버린다. 최근 이런 트렌드는 재밌는 현상이다. 과거 소비행태의 과시는 부르주아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현재 과시의 형태는 상류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으로 확장되었다. 현대 중산층의 과시 소비는 디지털 세계의 발전과 함께 폭증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들은 과시소비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이며 그들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는 것인가?



 19세기 말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막스 베버가 아니라 소스타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을 읽어야 한다. 초기 자본주의는 청교도 윤리와 도덕성에 입각하여 작동되었다. 그러나, 세기말의 자본주의는 1-2세대의 자본가들의 부를 상속받은 3-4세대 자본가들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다. 3세대 브르주아 계급은 이익창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소스타인 베블렌은 이들을 유한계급(Leisure Class)라고 명명했다. 'Leisure'는 영어 단어장에서 '여가'라고 알고 있지만 뉘앙스를 느껴보다면 '노동으로부터 자유'(Freedom from the demands of work)를 의미한다. 즉, 유한계급은 노동과 이익창출을 통한 방법으로 타인과 자신을 구분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과시소비를 통해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려고 노력한다. 과시소비는 파티를 열어 수많은 귀족들을 초대하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거나 극장에 가서 값비싼 좌석에 앉으며 자신의 옷을 과시한다. 이런 과시소비를 통해 유한계급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명성획득'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를 과시하면서 유한계급은 자신의 자본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다.  '명성획득'은 과거 자본주의 청교도 자본가들이 도덕에 기반했던 정신적 부분을 과시적 소비를 통해 타인들의 인정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소스타인 베블렌 시대에는 소비를 통한 부의 과시가 막대한 부를 거머쥔 부르주아 3세대에게 국한되었다면 현대에는 이런 과시소비가 중산층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엘리트들의 과시소비는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중산층의 과시적 소비는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몇몇 논문에서 과시적 소비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으로 이를 지적하고 있는데, 밀레니얼 세대는 바로 디지털 혁명과 함께 나타난 세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재 밀레니얼 세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제일 가난한 세대다. 산업화 세대는 대한민국이 발전할 때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386세대는 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산업화 세대의 경제적 발전의 혜택을 입은 마지막 세대다. 그 뒤의 X세대, 밀레니얼 세대는 고용과 주거불안을 겪고 있는 세대다. 그러나 소비행태적으로 보았을 때 밀레니얼 세대는 끊임없이 자신의 소비를 과시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아이러니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난한 세대로 알려져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가난한 유한계급이 되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대중이 소비하는 소셜네트워크의 콘텐츠에는 더이상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판명이 필요없어졌다. 가령, 나의 얼굴을 업로드할 때 보정APP과 포토샵을 사용해서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자신의 현실의 얼굴과 인스타그램의 얼굴이 다른 것을 인지하는 것은 오로지 유저 뿐이다. 그러나, 그 콘텐츠를 이용하는 대중은 그 사진을 현실이라고 믿는다. 그 누구도 사진에 대해 보정APP을 사용하고 수정했다고 질문하지 않는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중산층의 명품 인증, 호텔 식사, 해외여행 등의 전시는 그 누구도 진실과 거짓을 검증할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의 현실은 지극히 어렵더라도 인스타그램 속에서 호화로운 일상 아닌 일상을 연출한다면 그것을 누가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베블렌이 과시소비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명성획득'에 있다고 지적했듯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중산층의 과시소비는 '명성획득'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과 심각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구축할 시간이 부족하다. 자신의 존재를 구축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며 성가신 일이다. 그런데, 자아를 구축하는데 간단한 활로가 열렸다. 그것은 바로 타인으로부터 사회적 인정을 받는 방법이다. 자신의 소비행태를 과시하면서 현대인들은 자신의 자아를 형성해 나간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삶은 연출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현재는 '명성획득'이 자아형성을 넘어 '자신의 현재신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다리'로 그 역할이 확장되었다. 일반인이 명성을 획득하게 되면, 유명세를 통해 상품을 판매하고,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제는 현대사회에서 과시소비를 통한 '명성획득'은 자신의 계층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된 것이다. 현재 부의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자본주의는 소비자본주의가 되었으며 자신의 소비를 전시하면서 새롭게 부를 축적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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