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이 여행을 추억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쓰리디 쓰린 첫 실패 그리고 잃어버린 2년

by 욕심많은민지

나는 세계 여행자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꾼다는 그것, 세계여행이라는 판타지를 실현 중인 세계 여행자.

그래, 내가 보기에도 참 멋져 보이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여행을 '현재 진행형 실패'라 본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게 사실이고, 그게 현실이다.

이쯤 되면 혹자는 "그런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실패와는 거리가 멀지 않아?"라 물을 수도 있겠다.


나의 대답은?

절대적으로 "NO"다.


세계여행이 실패가 될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는 사람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자.



현재 진행형인 나의 실패는 무려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가을,

남편과의 연애도, 운영했던 개인 사업도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시절.

사랑은 뜨거웠고 사업은 흥했다.


하지만 사랑도, 일도 너무 뜨거웠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청소년기에도 겪지 않았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스물일곱 살이 되어서야 몸소 겪게 되었다.

나를 옥죄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순간에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몰아치는 업무량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고,

영업이 잘 될수록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는 게 무서웠다.

그 무렵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까지 더해지면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런 생각은 이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나 가게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날 거야!"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가게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겠다는 철부지 같은 폭탄발언에

남편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은 나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나의 힘듦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길 바랬던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감정을 오롯이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일을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다는 말로 얼버무리며

이 시대의 신여성인 것 마냥 코스프레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잘 되던 사업을 접고 여행길에 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편은 누구보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겠다는

내가 영 이해가 안 가는 듯했지만, 고맙게도 "함께 할 때 더 의미 있는 것" 아니겠냐며

나의 뜻을 함께하겠다는 대답을 내놨다.

그의 성향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함께 떠난다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뛰어넘은 그의 대답을 듣곤 종일 방방 뛰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세계일주를 결심한 직후, 나는 사업을 정리하는 것에 몰두했다.

남편은 가게 정리 천천히 하면서 세계일주 계획을 꼼꼼히 세운 다음 하늘길에 오르자고 제안했으나 나는 하루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여행길에 오를 준비를 마친 나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여행 경비만큼은 넉넉히 준비해서 출발하자고 약속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이 곳을 떠나고 싶었던 탓에 제 값도 받지 않고 가게를 정리해 버렸고 그 때문에 계획했던 예산에 비해 경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닥쳐버린 것.

결국 그 문제에 대한 대가를 치렀어야 했는데 그 대가가 바로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다.


워킹홀리데이라 함은 여행과 일을 동시에 즐기는 낭만적인 제도라고 많이들 알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호주 생활은 그리 녹록지가 못했다.

생애 첫 실패, 그 쓰디쓴 맛을 먼 나라 땅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실패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었다.

원하는 것은 무조건 쟁취해야 하는 성격 탓에 앞뒤 재지 않고 직진을 했지만 결과는 항상 성공적이었다.

운이 좋아서인지, 결과가 좋으니 과정을 실패라 생각한 적이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잘되던 가게를 단박에 그만둘 때도, 계획 없이 여행길에 오를 때도

급하게 군 대가로 호주행이 결정됐을 때에도 모든 일이 생각했던 대로 잘 흘러가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믿음과는 달리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고 약 6개월 간 실패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첫 직장이었던 농장에서는 하루 종일 한 끼 밥값도 채 안 되는 금액을 벌어서 생활을 연명했고, 목화 공장에서 일 좀 해보겠다며 무작정 이력서 들고 다닐 땐 GPS도 안 잡히는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어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싶은 위기도 겪었다. 돈이 없으니 40도가 육박하는 야외에서 10달러짜리 텐트 치고 자느라 고생도 참 많이 했다. 시골마을을 벗어나 시드니에 도착해서 얻은 청소일을 하면서는 사장에게 사기를 당해 수백만 원을 날리기도 했으며 해외에 나와 함께 고생을 하고, 함께 추억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더욱더 돈독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부부 사이도 최악을 향해 치닫았다. 매일을 싸우고, 매일을 울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거듭된 실패로 인해

마음의 병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실패에 마음속 두려움과 불안함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행복을 찾아서 도망쳤는데 현실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많은 시련들을 쏟아부었다.

수많은 일자리 중 내가 들어갈 자리는 왜 그리도 없는 건지,

함께이기에 더 의미 있을 거라 했던 이 여정은 왜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지..

심지어 부족한 예산을 채우러 호주에 왔는데 돈을 벌기는커녕 통장잔고만 점점 줄어드니

불안함에 잠 못 들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오히려 그리워하게 되는 지경에 달했다.

처음 느껴보는 쓰디쓴 인생의 맛에 무기력함과 우울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즐겁게 살아보고자 출발했던 여행길이 시작도 전에 버겁게 느껴졌다.


그나마 워킹홀리데이 7개월 차에 접어들 때 즈음 쇠고기 공장에 가까스로 취업을 하게 되면서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이제야 잘 풀리기 시작하는구나.

' 앞으로 무수히 다가올 좋은 날들을 팔 벌려 환영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온다.




사실, 한국에서 운영하던 영업장을 빨리 정리할 수 있었던 건 임시로 위탁경영을 맡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위탁경영자분께서 개인적인 문제로 더 이상 운영을 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달하셨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국으로 급히 돌아가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순간 패닉이 왔다.


본격적인 여행길엔 아직 오르지도 못했고 솔직히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 이제 어떻게 해. 아직 돌아갈 자신이 없어.. " 라며 한참을 울었다.


본 계획대로라면 2년이고 3년이고 "나 이제 괜찮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돌아갈 생각이 없었는데 계획이 어긋나게 되면서 나의 여행은 시한부가 되어버렸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냈고 사표 수리가 되던 날 우리는 호주를 떴다.


하지만 준비도 없이 급히 시작된 여행이 어찌 행복할 수 있었겠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표면적인 모습만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는 여정이었지만

사실상 속사정은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이 여행이 불행하게 느껴져"

한국을 떠나 이방인으로 생활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쯤 남편이 나에게 건넨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던 남편이 갑작스레 던진 이야기에

나는 덜컥 죄책감부터 들기 시작했다.


사실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남편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불안정한 이방인의 삶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따라 여행을 나온 것은 남편의 선택이었지만 결국 내가 아니었다면 남편이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미안함도 잠시,

죄책감은 원망으로, 미움으로, 배신감으로 바뀌었고 여행이 계속되는 걸 힘겨워하는 남편을 모진 말로

깎아내렸다.


점차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기만 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반대하고 싫은 내색을 하기 바빠졌고 심지어 이혼위기가 오기도 했다.

부부라면 한 번쯤은 겪는 위기라곤 하지만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함께 여행을 나왔는데 이런 위기가 온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힘겹게만 느껴졌다.


내면 속 불안함을 외면하고 도망치기만 모든 게 다 좋아질 줄로만 알았는데..

그래선 안 되는 거였던 거다.



왜 힘든 일은 동시에 오는 건지..

설상가상으로 더 이상 여행을 이어가기 힘들어진 결정적인 사건이 터져버렸다.


아마 모두가 알겠지.

'코로나 19'


그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우리는 멕시코 여행 중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로서는 그것이 마치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 듯했고

코로나 19가 지구 반대편인 이 곳, 중남미 대륙에 상륙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코로나 19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갈 때에도

중남미 대륙은 청정지역이니 걱정이 없다며 평소와 다름없이 여행을 지속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 페루에 도착했을 즈음엔 유럽, 미국 그리고 중남미 지역까지 감염자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코로나는 점점 악화되기만 할 뿐

좋아질 기미가 없었고 아시안인 우리를 향한 혐오를 내비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 불리는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 도착하자 마자는

WHO 팬데믹 선언과 동시에 남미에서 감염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페루에서 코로나의 대유행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겠다는 소식을 발표했고

뒤이어 볼리비아도 도로를 폐쇄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칠레에서 크루즈를 타고 남은 남미 국가를 여행할 계획이었지만 남미 국가들의 국경이 줄줄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여행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였고, 결국 우리는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국경을 닫지 않은 멕시코로 탈출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조금만 버티면 일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차분히 기다려봤지만 여전히 세계는 코로나 19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평범했던 일상은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버티기를 결정하면서 복귀 대신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기로 결정 후 처분까지 끝마친 상태라 더 이상 한국으로 돌아가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먹고살길 찾아서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호기롭게 한인민박집을 인수했지만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인 재난상황에 장사가 될 리가 만무했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어보고, 영상도 만들어봤지만...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더라.


모든 것이 착잡한 이 상황에 그나마 호전이 된 것이라고는 남편과의 관계뿐이다.

집콕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무수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 이외엔 모든 게 암흑처럼 깜깜한 상황이다.


고쳐지지 않은 마음의 병, 중단된 여행, 능력 없는 백수.

잔인하게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결론이 이거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떠나온 여행이 결국 나에게 남긴 건 또 다른 위기뿐이다.




현재 진행형인 이 실패에 결말이란 없다.

여전히 아프고 두려우며 모든 게 후회뿐인 것들 투성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고 깨우치게 할 만한 인생의 교훈도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내가 깨우친 삶의 진리가 있다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

삶의 굴곡을 내가 원하는 대로만 그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벅찰 만큼 기쁜 순간도, 가슴이 무너져 내릴 만큼 힘든 순간도, 견디기 힘든 위기의 순간도

필연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필연적인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앞으로 배워나가는 것이

이번 여행이 나에게 남긴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숙제를 잘 풀고 나면 지금 이 순간도 좋은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살아온 인생 중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노라"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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