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워홀 이야기

#4 김민지, 언제 정신 차릴래?

by 욕심많은민지

선샤인 코스트에 하루를 보내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깨닫게 된 우리.

지금은 못 먹어도 고! 보다는 스탑! 을 외치는 게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농장에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사실 일을 그만두고 뭘 해야 할지 정해둔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만둔다고 해서 지금보다 상황이 좋아질 거라 장담은 없었지만, 그저 농장에서 일했던 때를 생각하면 그 어떤 일이든 감사하게 생각하고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뿐이었다.


그때, 성수가 이리저리 정보를 알아보다가 "곧 목화 시즌인데 시즌 잡이라 수명은 짧지만 돈은 많이 벌 수 있대"라며 함께 이력서를 내러 가자고 제안했다. 목화를 실제로 본 적도, 공장에서 일을 해본 경력도 없었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니 솔깃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명 '개꿀 잡'으로 소문이 퍼진 터라 경쟁률이 어마어마했기에 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무작정 도전해보기로 했다.

다시 번다버그로 돌아온 우리는 곧장 관리자 분께 그만둔다는 연락을 드렸다. 호주에서는 보통 2주 전에 퇴사 여부를 통보하기 때문에 '당분간 일을 더 해야 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는데 인력이 부족한 편은 아니었는지 다행히 곧바로 퇴사를 할 수 있도록 처리를 해주셨다. 내가 일했던 고구마 농장에서는 고맙게도 일자리를 잃은 남편까지 함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줄 테니 그만두지 말라는 제안까지 해주었지만 이미 떠나기로 마음을 굳히니 거절하는 마음이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목화 공장으로 여정을 떠나기 전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또 한 가지의 미션이 있었다.

바로 '이력서 쓰기'.

목화 공장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해서 나의 강점으로 어떤 점을 내세워야 할 지도 막막했고 남편도, 나도 직업의 특성상 이력서를 써 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참 많이 막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력서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아무리 검색을 해보아도 어떤 내용을 써야 나를 잘 보여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목화 공장에 대한 정보 검색을 많이 했는지 꽤 그럴듯하게 써 내려가는 남편의 이력서를 흘깃흘깃 훔쳐봐도 도통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막막했다.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맨 끝에 완성한 이력서는 지난 나의 경험을 회사에 억지로 끼워 맞춘 그야말로 엉망진창 이력서였다. 아마도 기업에서 싫어할 넘버원 이력서!


어쨌거나 그 당시에 내가 가진 거라곤 출처가 불분명한 자존심뿐이었기에 내 이력서가 엉망진창 인지도 몰랐다. 이력서를 써 내려가는 동안 '책 좀 많이 읽을걸, 대학교 다닐 때 글쓰기 수업 좀 열심히 들을껄' 백 번도 넘게 후회했는데도 이력서를 완성하고 난 후 그 후회들을 지우개로 지운 듯이 뻔뻔해졌다.

'그동안 써 본 적이 없어서 조금 서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있었던 거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얼마나 무모한 건지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김민지, 너 언제 정신 차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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