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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Feb 19. 2024

나물반찬이 좋아지고 있다는 건?

곤드레 돌솥밥집에서

언제부터인가 입맛이 달라지고 있었다. 

세월 탓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나만의 일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또래 엄마들이 종종 만나 밥 먹자고 하면 늘 브런치를 즐겨 먹던 우리가 이제는 쌀알을 먹어야 밥이라며 배시시 방긋 웃는 미소가 격하게 공감한다는 의미다. 몸이 변하면서 입맛도 변한다는 말에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나물반찬, 나물밥, 시래깃국, 청국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려서는 계란으로 만든 계란말이나 계란찜 반찬, 햄이 들어간 반찬, 고기로 만든 장조림이나 불고기 반찬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대신 초라할 정로의 풀밭에 나뒹구는 상차림을 먹고 나면 속도 편해지고 소화도 금방 됐다.


나이 들면 입맛도 식성도 바뀐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며칠 전 독서모임 선배님들과 찾은 거저울 곤드레 돌솥밥은 나를 위한 곳처럼 밑반찬이 최고였다. 가짓수도 여러 개였지만 친정엄마의 손맛처럼 담백하고 Msg맛이 나지 않고 고향의 맛이 느껴졌다. 첫술을 뜨기도 전에 우리는 차려진 상만 보고도 할 말이 수백 가지였다. 다들 베테랑 주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차림은 집에서는 절대 할 수 없다며 인정했다.


주부의 역할 중 가장 기본이 밥 준비(상차림)이다. 가족을 위해 준비하는 삼시 세 끼는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 하는 요리들이 더 많았다. 아기 때는 뭐든지 맛있다고 엄지 척을 날려주더니 이제는 외식으로 길들여진 입맛 때문인지 엄마의 음식보다 반조리되어 나오는 국과 찌개들을 끓어서 주는 것을 더 맛있어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나의 요리실력이 처참하게 무너져도 인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사다 날라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돌솥밭에 나오는 곤드레밥을 직원분이 맛있게 골고루 섞어서 각자의 그릇에 알맞게 담아 주셨다.  곤드레밥을 간장에 비벼 먹어도 되고 그냥 밑반찬에  올려먹어도 되지만 아무렇게 먹어도 맛있었다. 


일단 다양한 나물반찬들이 많아서 좋았다. 주부라면 부지런하다면 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반찬들이지만 채소값이 너무 비싸져서 오히려 사 먹는 게 저렴하다는 핑계를 들며 사 먹곤 했다. 우리들은 미식가가 되어 맛에 대해 평가했고, 왜 내가 하면 이 맛이 안 나오냐며 투덜거렸다. 특히 무나물 무침이 너무 맛있어 토론이 벌어졌다. 무를 채 썰어서 갖은양념을 넣어 볶은 거 같은데 씹히는 식감이 다른 게 문제였다. 햇볕에 말려서 꼬들꼬들한 상태로 볶은 거 같다며 추측했지만 사실은 알 수 없다.  "너도 먹어봐?"라며 하나하나 꼼꼼하게 맛을 음미했어도, 난생처음 먹어보는 식감이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는

남이 해주는 요리다.


_주부생각 모음





곤드레밥을 다 먹고 나니 다음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돌솥에 물을 부어둔 누룽지탕이었다. 골고루 섞어서 담아서 한 수저를 뜨니 구수한 향이 맛있었다. 비주얼은 일반 누룽지와 달랐지만 맛은 더 좋았다. 이미 배는 꼭 찼다고 아우성쳤지만 내 입에는 더 달라고 수저를 들게 했다. 다들 먹느라 바쁜 젓가락의 손놀림과 오물오물 씹는 입이 합주하듯이 대화 없이 한 그릇을 순삭 했다. 나만 한 그릇을 비운게 아니기에 부끄러울 필요가 없었다. 연애할 때는 꼭 밥을 남겼는데 마흔이 넘어가서는 밥심으로 산다고 한 그릇 뚝딱이었다.



맛있게 먹어서 그런지 건강해는 밥집이라고 자신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계산대 옆에서 반찬도 판매하고 있어 두 팩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장님의 통찰력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거 같아 얼굴이 빨개졌다. 전에 주부이기 때문에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고 나면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 꼭 꼭 마트에 들렀었다. 그리고 점심에 먹었던 반찬들을 회상하며 장을 보았다. 장바구니에 버섯, 콩나물, 세발나물, 고사리, 상추, 뚱채나물 등을 가득 담아서 보란 듯이 돌아와 주방 식탁에 내려놓으며 곧바로 후회했었다. 야심 차게 장을 보았지만 배고프다며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 당장 밥을 내놓으라는데 이 많은 나물반찬을 언제 하냐며 고스란히 냉장고로 직행했다. 그 후 의욕이 시들해져 사 왔던 나물들을 버리곤 했었다. 


그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가뿐하게 반찬 두 팩을 샀다. 아이들보다는 남편에게 맛 보여주기 위해다. 나처럼 야채보기를 돌같이 하고 고기없는 밥상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남편도 입맛이 변했는지 맛있게 먹어주었다. 뚱채나물과 세발나물 무침과 도라지생채와 고사리 반찬을 사 왔는데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해 주고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장수하시는 분들을 보면 시래깃국에 나물반찬만 드신다고 했다. 비건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저절로 비건을 선호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가 보다. 이제는 몸에서 원한는 것만 섭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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