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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y 23. 2024

친정 아버지의 고령 운전면허 갱신기

75세 고령 운전자 면허 갱신기

  얼마 전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언제 집에 오라면서 재촉하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말에 남편과 친정에 들렀는데 운전면허 갱신하러 가야 하는데 안경을 맞추러 가야 한다며 마음이 바쁘다고 하셨다. 나는 그냥 운전면허 갱신하면 되는 쉬운 일인가 싶었는데 아버지에게는 아니었다. 아주 중요한 시험이고 탈락하면 큰 일 나는 일이었다.


  75세 고령 운전자가 되면 면허를 갱신하는 데 있어 여러 코스가 있는데 무슨 고시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잔뜩 겁을 먹고 계셨다. 아버지가 사는 동네는 도시와 살짝 떨어진 근교 지방의 면단위 소재지라 병원, 마트, 은행 편의 시설을 가려면 무조건 자동차는 필요했다. 특히 나이 탓으로 이곳저곳 불편한 몸으로 지내는 아버지에게 있어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애마였다. 자동차 덕분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물리치료를 다니시고 정기적으로 고혈압약이랑 심장내과 약을 타러 병원에 엄마를 모시고 가야 했다. 아버지 머릿속에는 차 없는 세상은 까마득하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자가용으로 편하게 병원에 다니다가 면허 갱신에 탈락하면 있는 자동차도 쓸모가 없어지고 병원 다닐 생각 하니 생각만 해도 고생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가 젊다고 면허 갱신이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며 큰소리쳤던 게 미안해졌다. 자식들 키워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소리를 몇 번하셨는데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니 씁쓸하여 언니, 오빠들에게 전화 좀 드리라고 했다. 바쁘다는 핑계 대며 아버지를 소외시킨 거 같으니 풀어드리라고 했다. 아버지는 안경도 새롭게 맞추시고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예전 사고로 불편한 다리로 면허갱신 안 해줄까 무릎 물리치료도 부지런히 당기셨다. 이미 면허갱신한 아버지 친구분들에게 들은 정보가 많았다. 일단 치매검사를 해야 하고, 까다롭게 질문을 시시콜콜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미 검사를 받기도 전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수험생처럼 치매 안심센터에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전화기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늘 하던 대로 하세요." 아니면


"대충 질문이 어떻게 나오는지 친구분들에게 살짝 물어봐요."


  아버지가 노안으로 백내장 수술을 한 쪽씩 번갈아가면서 서둘러하신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눈이 안 좋아서 한번 재검을 받은 상황인지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수술하고 안경을 급하게 맞추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누구나 시험이 처음에는 얼떨결이지만 재검일 경우에는 입장이 달라진다. 이번 떨어지면 큰일 난다는 두려움이 크다. 그런 아버지의 속사정을 아무도 몰라주어 미안해졌다. 어쩌면 치매인지 테스트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정상이 나오지 않으면 병원에 방문에서 다시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다행히 기억력이 또렷한 아버지에게 치매인지 검사는 거뜬하게 통과했지만 안경을 맞추고 가셔서 적성검사까지 무사히 마쳤다. 두 시간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교육을 받고 면허증을 받아오셨다. 기분이 얼마나 좋으셨는지 사 남매에게 전화를 돌리셨다. 아버지 자신도 자랑스러웠는지 마음이 느껴졌다.


  "축하드려요. 아버지"라고 말하고 맛있는 갈비탕을 사드리러 찾았다. 이제야 긴장하고 걱정했던 마음이 풀리셨는지 아무나 딸 수 있다면서 여유 있게 너스레를 떨었다. 역시 시험을 보기 전과 후의 모습은 극과 극이구나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좌불안석하며 초조해하던 아버지는 온데간데없었다. 호탕하고 자신만만하던 아버지의 어깨가 갈수록 야위고 작아 보였다. 어릴 때 아빠는 키다리 아저씨만큼이나 거인 같았는데 어느새 중년이 되어보니 힘없고 나약한 남자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목소리만큼은 예전과 같아 누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면 싸우는 줄 안다.









※ 고령 운전자 면허 갱신 프로세스



  먼저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첫 번째 테스트로 선잇기 검사를 한다. 그리고 치매안심센터에서 인지선별검사를 진행하는데 말 그대로 치매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질문지에 답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75세 이상 교통안전 교육과 정기적성검사를 시행해야만 갱신된 면허증을 발급받게 된다. 

75세 이상 교통안전 교육은 온라인 교육과 교육장에서 듣는 교육을 선택해서 2시간 들을 수 있다.




요즘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다. 원래 면허 갱신주기도 10년 한 번인데 고령 운전자는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었다. 고령으로 갈수록 여러 가지로 순발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아버지가 자가용을 운전하면서 병원 다니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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