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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y 24. 2024

좌충우돌 친정아버지의 운전면허 갱신기

좋은 생각 응모원고



어제 쓴 글을 수정보완하여 좋은생각에 응모해 봤어요. 작가님들께 다시 정리된 원고를 보여드리기 위해 올려봅니다.


매일 글을 보고 또 다듬는 생활이 너무 좋네요.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나아지고 있다고 응원하면서요. 행복한 금요일되세요.



  얼마 전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언제 집에 오라면서 재촉하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말에 남편과 친정에 들렀는데 운전면허 갱신하러 가야 하는데 안경을 맞추러 가야 한다며 마음이 바쁘다고 하셨다. 10년에 한 번 받는 것으로 알았던 운전면허 갱신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면허갱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아버지의 말도 흘려들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시험이고, 탈락하면 큰일 나는 일이었다.



  알아보니, 75세 고령 운전자가 되면 면허를 갱신하는 데 있어 여러 코스가 있었다. 무슨 고시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잔뜩 겁을 먹고 계셨다. 아버지가 사는 동네는 도시와 살짝 떨어진 근교 지방의 면 단위 소재지라 병원, 마트, 은행 등 편의 시설을 가려면 무조건 자동차는 필요했다.


  아픈 엄마까지 돌봐야 했기에 특히 그랬다. 평생을 농사짓고 살면서 남은 노년은 허리, 무릎, 목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고 지팡이 짚고 약간 절뚝거리며 걸으신다. 지팡이 짚으면 노인네라고 하셨던 아버지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니, 언제부턴가 당연한 일처럼 여겼다.



  아버지에게 있어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애마였다. 차를 스스로 운전하는 덕분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허리, 다리, 목을, 물리치료를 다니시고 정기적으로 고혈압약이랑 심장내과 약을 타러 다니셨다. 종종 엄마를 보건소에 가서 치매약도 받아야 했다. 아버지 머릿속에는 자동차 없는 세상은 까마득하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자가용을 운전하면서 편하게 사시다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면허증도 갱신하기 어려워졌다며 알면서도 분통을 터트렸다. 운전면허 갱신에 탈락하게 되면 앞으로 차도 쓸모가 없어지고 버스 타고 병원 다닐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며 고생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처 몰랐다. 아버지처럼 깊은 속마음도 모르고 생각 없이 말했다. 면허 갱신이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라며 큰소리쳤던 게 미안해졌다. 아버지는 한숨 쉬며, "자식 놈들, 죽어라 열심히 키워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라는 소리를 몇 번하셨는데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니 생각하니 불효자가 따로 없었다. 언니, 오빠들이 있는 가족 카톡방에 아버지께 전화 좀 드리라고 알렸다. 다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 대며 자주 찾아오지도 않고 아버지를 소외시킨 거 같으니 사죄드리라고 했다. 아버지는 일단 백내장으로 눈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하며 안과에 수술을 예약했다. 그날 나는 운전기사가 되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는데 양쪽 수술을 권하셨다. 한데 아버지는 불편한 엄마를 돌보기 위해 한쪽씩만 수술시켜 달라고 했다. 엄마는 허리를 다섯 번 수술하면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었다. 지금은 호전되셔서 주간 노인보호센터(노치원)에 다니고 있기에 수술도 가능했다. 아버지는 엄마가 아픈 게 자신이 젊어서 고생을 많이 시켜서 죽을 때까지 돌봐야 한다며 지극정성이셨다. 한 달 뒤 다른 한쪽 눈을 수술하고 회복되어 운전면허 시험장에 면허 갱신을 알아보셨다. 시력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은 백내장 때문이 아니란 걸 알고 안경도 새롭게 맞추셨다. 이제 끝인 줄 알았는데 걱정이 남아있었다. 예전 교통사고로 다리 길이가 달라 절뚝거려서 면허갱신을 안 해줄까 물리치료도 부지런히 받으셨다. 주변에 고령 운전면허 갱신한 아버지 친구분들에게 들은 정보가 넘쳐났다. 일단 치매인지검사를 받아야 하고, 까다롭게 다양한 질문을 시시콜콜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미 검사를 받기도 전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수험생처럼 긴장하며 치매 안심센터에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전화기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대망의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가시는 당일날 아침 일찍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큰 소리로 응원했다.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늘 하던 대로 하세요. 친구분들께 들었던 질문에 준비해 둔 답변을 떨지 말고 편안하게 대답해요. 아셨죠."



"그럼, 우리 막내딸아~ 걱정 마라."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모르게 전화를 끊고 기다렸다.




  누구나 시험은 긴장되고 떨린다. 아버지는 재시험이라 입장이 달랐다. 이번에 떨어지면 큰일 난다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 아버지의 속사정을 아무도 몰라주니 서운하셨을게 당연했다. 어쩌면 치매인지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할지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정상으로 통과되지 않으면 병원에 방문에서 재검사받아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다행히도 기억력이 또렷한 아버지에게 치매 인지 검사는 거뜬하게 통과했지만, 백내장 수술과 안경을 맞추고 가셨기에 적성검사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 시간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교육받고 면허증을 받아오셨다. 여러 차례 긴 과정을 통과해서 받아온 면허증이 얼마나 값진 것일지 나는 안다. 아버지는 기분이 얼마나 좋으셨는지 사 남매에게 전화를 돌리셨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장남과 장녀에게 제일 먼저 했다. 아버지 자신도 자랑스러웠는지 너스레를 떨면서 내게 속사정은 우리끼리만의 비밀로 하자고 당부했다.




  "축하드려요. 아버지"라고 말하고 맛있는 갈비탕을 사드리러 아버지를 찾아갔다. 이제야 긴장하고 걱정했던 마음이 풀리셨는지 아무나 딸 수 있다면서 여유 있게 너스레를 떨었다. 역시 시험을 보기 전과 후의 모습은 극과 극이구나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좌불안석하며 초조해하던 아버지는 온데간데없었다. 호탕하고 자신만만하던 아버지의 어깨가 갈수록 야위고 작아 보였다. 어릴 때 아빠는 키다리 아저씨만큼이나 거인 같았는데 어느새 중년이 되어보니 힘없고 나약한 남자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목소리만큼은 예전과 같아 누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면 싸우는 줄 아니 다행이다.




  고령 운전자 면허 갱신할 때 알아둘 점이 있다. 먼저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첫 번째 테스트로 선 잇기 검사가 있다. 다음으로 치매안심센터에서 인지 선별검사를 진행하는데 말 그대로 치매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질문지에 답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75세 이상 교통안전 교육과 정기 적성검사를 통과하면 갱신된 면허증을 발급받게 된다. 75세 이상 교통안전 교육은 온라인 교육과 교육장에서 듣는 교육을 선택해서 2시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요즘 수명이 늘어난 만큼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원래 면허 갱신주기도 10년 한 번인데 고령 운전자의 나이에 따라서 갱신 기간이 다르다. 75세 이상은 얼마 전부터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었기에 안내 고지서가 오면 그때 받으면 된다. 고령으로 갈수록 여러 가지로 순발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인 듯하다. 아버지의 운전면허 갱신은 참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기에 수험생을 보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면허증을 반납하지도 않고 현재에도 운전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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