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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Jul 12. 2024

흙탕물에 휩싸인 마을

장맛비

친정아버지는 앞마당에 텃밭과 비닐하우스로 만든 차고가 있는 단독주택에 사신다. 뒤로는 산이고 앞으로는 천이 흘러 참 살기 좋은 집이라고 자신했었다.

평생을 한 마을에 사시다시피 할 정도로 이 마을의 터줏대감처럼 모르는 것이 없다. 제법 큰 마을이었는데 점점 도시로 젊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나이 든 아버지 또래의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고, 논밭으로 농사짓던 땅에는 공장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옛날 시골집은 몇 집이 안되고 외지에서 살다가 땅을 사서 현대식으로 별장을 지어서 들어와서 사는 주민들로 섞여있다.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과 50년 넘게 사셨기에 집안살림뿐만 아니라 그 마을의 날씨와 생활에 대해서도 빠삭하시다. 마을회관으로 종종 놀러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 시골인심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서 잔치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사소한 것들을 챙겨주는 인심에 극찬했었다. 그러면 뭐 하나, 아버지와 어머니 곁을 떠나는 친구 같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자리는 외로움으로 오래갔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해도 동고동락했던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외로움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쓸쓸해 보였다.





얼마 전 충청도를 강타한 비는 아버지를 다소 흥분하게 하셨다. 매일같이 물리치료 다니면서 지나가던 다리가 침하되어 통제되는 바람에 병원에 갈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100년이 흘러도 끄떡없다는 다리가 내려앉을 수 있다며 세상이 말세라고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아직 피해가 없었지만 누구나 가슴 쓸어내릴 일이었다.



아버지가 자연재해로 놀란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년 전 추석연휴에 일어난 산불은 다른 동네에서 시작됐지만 아버지가 사는 선산과 뒷동산까지 집어삼켜서 살다가 별일이 다 있다고 혀끝을 차셨는데 이번에는 장맛비가 그랬다. 아버지는 충청도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충청도에서 사셨기에 마을이 비도 알맞게 오고 그렇게 덥지도 않고 눈도 많이 내리지 않아서 좋다고 적당해서 좋다고 했다. 그러나 점점 보통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번 장맛비가 예상외로 많이 내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윗지방에서 많이 내렸는지 실개천을 올라 버스가 다니는 도로까지 물이 차여 흙탕물이 뒤범벅이었다고 한다. 어려서 물난리가 나면 구경하러 이중도로에 나갔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랑은 비교도 안된다고 하셨다.




물도 무섭지만 불도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막상 내가 사는 생활터전에 다다를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앞마당이나 집으로 물이 들이닥쳐도 멍하니 바라볼 수 없는 게 바로 자연재해가 아닐까 싶다. 둑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일어나서 산이 무너져내려 토사가 도로를 덮쳐서 인명피해가 나는 비가 얄밉기만 한다. 내리라고 할 때는 안 내리고 적당하게 내려도 좋겠건만 우리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 시골마을에 살던 친구들의 부모님이 사셨기에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넣었다.


아버지마을만 난리 난 것이 아니었다. 윗마을에서 깻잎을 하는 비닐하우스, 고추밭, 콩밭 할 거 없이 벼를 심은 논에까지 물이 찼다고 한다. 다리가 넘쳐서 학교를 못한 조카가 있을 정도로 장맛비는 여기저기 피해를 남기고 떠나갔다. 지금은 시커멓게 흘러가던 흙탕물이 쭉 빠지고 나서 맑은 물이 흐르지만 곳곳에 쓰러기더미와 옆으로 넘어진 풀들과 진흙더미라고 했다. 국민학교 다닐 때 돌담다리를 건너 학교에 오는 친구가 있었는데 비가 많이 내리면 선생님이 집에 일찍 가라고 했고 며칠 등교하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예나 지금이나 세월이 변해도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여기저기 수해난 집들은 복귀하려면 난리겠지만 남기고 간 피해는 처참했다. 인명피해 난 곳도 있지만 아무리 조심하고 조심해도 비나 불의 피해는 무서웠다. 아버지는 당분간 진흙으로 된 마을을 지켜봐야겠지만 산처럼 높은 곳에 위치한 집에 물이 들이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몇 번을 얘기했다. 이번 장맛비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은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막막한 그 심정, 자식같은 농산물은 어찌하라고. 전부 다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조금은 알 듯하다.


자나 깨나 불조심, 비조심이라고 안전하게 여름을 보내는 게 최고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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