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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Dec 07. 2023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아니기를

오십이 돼서  비싼 수트를 사는 마음




지난 주말에 남편 생일에 맞춰 현대 아웃렛에 갔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의외로 남성복 매장은 한가했다. 우리가 초이스 한 곳은 바로 갤럭시 매장에서 수트를 맞췄다. 오십이 넘은 이 나이에 왜 그렇게 비싼 수트가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남편은 마지막 아버지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받은 용돈에 더 보태서 큰 마음 먹고 수트를 장만했다. 남자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철이 든다고 하는데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나도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말을. 존경받는 아버지가 된다는 말을 참으로 어렵다.

누구나 자식을 낳는다고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자식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려면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가 먼저 걱정이 앞선다. 내가 생각해도 시아버지는 정말 본받을 점이 많은 아버지들 중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세가 있으셔도 아직 자신의 일을 하고 계시고 절대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게 싫으셔서  도와달라며 일을 부탁하지 않는다. 원래 주말이면 자식들을 불러서 소일거리를 돕기를 바라는데 너희들도 주말은 가족들과 쉬어야 한다며 연락 한 번이 없으셨다. 비교하면 안 되지만 우리 친정아버지와는 전혀 다르시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일찍이 오빠들에게 시시때때로 도움을 줬기 때문에 주말이나 바쁜 농사철과 추수철이 되면 영락없이 부르신다. 당연히 나이 드셔서 혼자 못하시니까 도와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당연시 여기며 호출하시는 아버지였다.








일주일 후인 오늘 수선이 본사에서 마치고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퇴근길에 남편과 찾으러 갤럭시 매장에 들렀다. 주말과는 달리 한산했지만 그 사이에 디피되어 있는 옷이 바뀌었다. 내 눈에 쏙 들어오는 가죽점퍼가 맘에 들었지만 가격이 너무나 사악했다.


남편은 수선되어 온 옷을 입어보고 치수에 맞는지 체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얼마 만에 맞춤 정장을 샀는지 기억이 까마득하여 가물가물하다. 남편의의 어깨, 팔 길이, 다리길이를 재는데 '저런 풍경을 언제 봤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결혼식 하기 전에 예복을 맞추기 위해서 백화점을 수시로 드나들었을 때 봤었다. 참 오랜만에 좋은 수트를 사는구나라는 생각에 짠했다. 가족들에게는 최고로 좋은 것을 사주는 사람이 자신에게는 홀대했다. 꼭 엄마들이 남편과 자식들에게는 메이커 사주면서 본인은 시장 옷을 사 입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가 바뀐 건가?



남편은 신혼 초에 업무상 매일 정장을 일상복처럼 많이 입었다. 하루에 와이셔츠를 하나씩 입어서 신혼 초에 성질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새댁이라 세탁소를 이용할 생각을 못 하고 손수 다림질을 했었다.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림질 솜씨가 없었기에 더 힘든 다림질이었다. 와이셔츠와 바지를 다림질했던 순간을 잊고 살던 요즘이었다.


그랬던 남편이 코로나 이후로는 거의 정장보다는 티셔츠와 가디건을 입고 깔끔한 차림으로 출근했었다. 다행히 나의 다림질할 기회도 줄었고 와이셔츠는 세탁소에 맡기고 있었다. 세월이 변하듯 나의 살림하는 방법도 변했다. 최대한 내가 편한 방향으로 말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다리미에 델까 봐 세탁소에 맡기기 시작하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예복만큼이나 비싼 고가의 정장을 사게 된 것은 아버지의 용돈 때문이었다. 이번에 아버지께서 가족들에게 통 크게 용돈을 쏘셨다. 어머니, 아주버님, 남편, 나까지 괜찮은 겨울 외투를 사입이라는 명령이었다. 다른 곳에 쓰지 말고 꼭 외투를 사 입이라고 했다.

사람을 아직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우리나라의 첫인상 때문일까? 늘 좋은 옷만 입으셨던 아버지에게는 가치관이 있으셨다. 옷 하나를 입어도 최고로 좋은 옷을 사 입으라고 말이다. 그런데 여자들은 옷이 많이 필요한데 어떻게 최고로 사 입을 수 있을까 싶어 조금은 낮은 가격으로 여러 가지를 사게 된다. 하지만 돈이 적게 들수록 오래 입을 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좋은 옷일수록 오래 입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님의 사랑이 담긴 용돈이라 더 의미 있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용돈이지만 그 연세에 자식에게 괜찮은 코트 하나 사 입으라고 주실 수 있는 능력에 감사했다.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아버지 나이가 됐을 때 우리 애들에게 과연 옷 사 입으라고 돈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라고 회상하며 눈물이 핑 도는지 눈물을 삼킨다. 나는 남편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 마음 절대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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