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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Dec 18. 2023

물구나무서기는 필수

인공수정 후 다리 올리기


어려서부터 몸은 타고나길 유연하지 않았고 체육을 가장 싫어해서 학교 다닐 때도 물구나무서기를 한 적이 없던 나였다. 무용과 전공자도 아니고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았던 내가 임신을 위해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동안 방송 매체에 허리통증으로 거꾸로 매달리는 운동기구가 몸에 좋다고 해서 헬스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분들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운동기구를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한겨울의 고드름처럼 시리고 아팠다. 왜냐면 우리는 사연 있는 물건을 볼 때마다 내게 닥쳤던 경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여전히 헬스장에 마주치는 거꾸로 매달리는 운동기구는 나를 난임의 추억으로 끌어당긴다.   

   

경험상 난임을 겪었던 부부는 물구나무서기가 임신에 좋다는 것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물구나무서기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어도 임신이 잘 되는 비법이라며 소문으로 난임 부부들은 무조건 따라 했다.



시어머니는 애 낳는 특별한 비법을 알고 있듯이 종종 남편 없이 나를 집으로 불렀다. 조용조용 부부관계에 대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물으셔서 자존심이 상했다. 너무 놀라서 뛰쳐나올 상황이었지만 참고 들을 수밖에 없는 힘없는 새댁인 며느리였다. 같은 여자로서 정말 치욕스럽고 너무 수치스러웠다. 마치 물구나무서기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내려오는 전통처럼 느껴졌다. 애를 갖지 못하니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견딜 수 없이 무너졌다. 그때마다 자주 드나들던 인터넷 난임 카페에서  위로받아 눈 녹듯 치료되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 난임 카페가 친구보다도, 가족보다도 더 따뜻했다. 어디 사는지 몇 살이지 묻지도 않고 자기 일처럼 따뜻한 댓글로 보듬어 주었고 위로해 줬다. 무너져 내린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 죽고 싶은 심정일 때 난임 카페가 나를 살러줬다.



인공수정하면 거꾸로 세워 놓는다는 말도 이곳에서 처음 었다. 카페 임신 질문 방에서 부부관계를 가진 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임신이 잘 된다는 글을 읽고 나서 효과가 있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공 수정하기 전이었지만 평상시에 자연 임신법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해보기로 작정했다. 간절한 마음에 그날 저녁부터 물구나무서기를 해봤다. 또 다른 비법이 있다면 몽땅 해볼 심산이었다.      







오랜 난임으로 고생하면 주변에서 아이 낳는 데 선심 쓰듯이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사자인 우리보다 오히려 더 듣기 거북한 잠자리 방법을 자랑하듯이 전한다. 여자인 나보다 남편은 더 사회생활을 하니 더 심했다며 입에 담기 싫다고 했다. 임신에 좋다는 것을 준비해서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선배도 있었고, 사슴뿔의 피, 산딸기가 좋다며 보내는 지인도 있었다. 다양한 아기 낳 비법들을 얘기해 줘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듣고 있는 자체가 거북하고 스트레스였다. 주변에서 임신이 잘 되는 비법이라며 으스대면서 했던 말들이 더 상처가 됐다.   나도 남편도.


   

부부관계 횟수를 더 많이 하면 임신이 잘 될 거라며 시도 때도 해보라는 조언은 신빙성도 없었다. 병원에서 오히려 잦은 잠자리를 갖는 게 더 몸에는 안 좋다며 민망한 얘기를 들어야 했다. 오히려 금실 좋은 부부가 아기가 없다는 말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었다. 참으로 부끄러울 수 있는 일이지만 주변에 난임 부부가 흔하게 겪는 일이다.



난임 부부가 병원을 찾으면 첫 번째 시도는 인공수정이다. 난임 인공수정을 시작하면서 물구나무서기가 떠올라 엉덩이를 치켜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무리 오래 물구나무서도 임신되기는커녕 머리와 목의 통증만 늘어 갔다. 임신만 된다면 그런 통증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기대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온갖 잡다한 비법들은 내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엉덩이를 하늘 높이 향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코를 골고 자는 남편을 뒤로하고 밤마다 나는 무용과 지망생으로 변신했다.      


점점 우리 부부는 잠자리가 숙제처럼 의무감으로 시작되었다. 누구를 위한 결혼이었는지 아기를 낳기 위해 결혼했나 싶을 정도로 부담이 앞섰다. 잠자리의 마무리는 당연하다는 듯 다리를 치켜들어 벽에 올리고 물구나무서기로 끝을 맺었다. 내 몸의 사소한 증상 변화에 민감해졌고 사소한 복부 통증이라도 느껴지면 설마설마 기대했다. 허리와 엉덩이를 벽에 붙여 최대한 발끝은 천장으로 쭉 뻗어서 몇 분을 하는지 몰라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해야 하는지 적당한 시간을 알지 못해 때론 기대어 잠들 때도 있었다. 괴상하고 망측한 자세로 잠든 내 모습이 초라하기보다는 절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이까짓 게 뭐 어렵다고. 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지 궁금했던 남편도 묻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점점 대화는 짧아져 갔고 궁금해도 절대 묻지 않으며 최대한 참았다. 연애할 때의 애틋함은 사라지고 의무적인 부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공수정을 하지 않을 때도 부부관계를 가지면 물구나무서기를 계속했다. 속으로 꿍꿍이가 있었다. 바로 자연임신이 될 것 같은 기대를 내려놓지 못했다. 부족한 것보다 과한 게 낫다는 신념으로 확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더 오래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욕심이 과했는지 물구나무서기를 하다 앞 구르기를 하는 횟수가 많았다. 깜깜한 방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몸짓 소리가 쿵!! 하고 정적을 깨 드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할 거냐며 소리치던 남편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묻지도 않는다.      




남들은 허리통증 완화를 위해 거꾸로 매달리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나는 임신이 빨리 되라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면 아마 비웃겠지만 나 같은 난임부부 간절한 기도로 몸부림치는 행위였다. 이렇게 난임은 나의 허리통증까지 치료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이렇게 해서 임신이 된다면  정말 거양득이 증명되는 일이다. 언제까지 물구나무서기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임신이 될 때까지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물구나무서기는 마지막 코스요리처럼 장식됐다. 속으로는 두 손 모아 밤마다 계속 빌었다. 시키는 것은 어떤 것도 할 수 있으니, 제발 임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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