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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선 Sep 15. 2023

아직은 추웠던 어느 봄날에

집도 좋은데 여행도 좋아하는 번외 시리즈 : 청도 키에튀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몸소 느껴서인지 다가오는 봄을 앞두고 마음이 이래저래 심란하다. 추웠던 땅이 녹아 따뜻한 봄이 가져다주는 설렘이 어쩐지 묘하게 모순적이다. 웅크렸던 세상이 환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혼자만 동떨어진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눈치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야속해서 그런 것일까? 한동안은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에 훌쩍 여행을 떠나야 함을 느낀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변화를 줘야 할 때가 왔구나..!



  대구에서 멀지 않은 곳, 청도에 너무나도 근사한 집을 발견했다. 아주 깊은 산골짜기에 묵직한 나무 툇마루가 매력적인 이곳은 바로 키에튀드이다. '평온함을 연구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키에튀드. SNS 계정만 보아도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산 아래, 자연과 잘 어울려진 평화로운 집의 모습에 복잡하고 삭막했던 도시에서 삶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어느 봄의 중턱의 여행을 계획했다.



  나의 또 다른 오랜 친구, Y와 오랜만에 여행길을 떠났다. '잠시 도시를 벗어나 산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보내보는 거야!' 단순 여행이지만, 나의 포부이자 목적을 계속하여 되새긴다. 도착하기 한 시간 전, 호스트분의 다정한 문자가 도착했다. 약속 장소에 미리 와 있겠다는 문자. 약속된 장소는 숙소가 아니다. 숙소로 들어갈 구불구불한 산길의 시작점이었다. 그곳에 호스트분이 차를 끌고 먼저 마중을 나와 계셨다. 수수한 옷차림의 밝은 미소를 지닌 그녀와 함께 다소 수줍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분의 뒤를 따르며 조금 험난했던 산길을 어렵게 올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튀어나오는 어색함을 애써 숨기며 호스트분의 안내에 격하게 반응을 했다. "모닥불 하실 거죠? 이따 저녁에 모닥불 세팅해 놓을게요! 그리고 내일 드실 아침 재료도 함께 가져다드릴게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호스트분이 나가시자마자 친구와 함께 보물찾기하듯 숙소를 샅샅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공허한 숙소의 적막을 깨어주고 하룻밤을 보낼 이곳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 본다.



  이 숙소 주변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도로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화려하게 빛나는 간판들도. 오직 자연만이 존재할 뿐이다. 새소리와 함께 가끔 개 짖는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기도 한다. 나는 모든 창문을 열고 집 안까지 따뜻한 봄바람이 넘나들며 그 계절의 온도를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꽃샘추위가 와버렸다. 걸어보자! 들고 온 옷을 겹겹이 챙겨 입어 숙소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기로 했다. 봄의 기운은 아주 연하게 느껴졌지만, 곳곳에 하얀 자두꽃이 만개했다. 풍경만으로도 봄의 모습을 마음껏 즐겼으니 그걸로 되었다. 걸을 때마다 어릴 적 시골 외할머니댁에 놀러 간 기억이 떠올랐다. 주변은 모두 농작물들을 재배하기 위한 비옥한 땅들뿐이었고 흙냄새 아니면 거름 냄새로 가득했다. 어른들의 눈에 잠시 벗어나 나이가 비슷했던 사촌들과 탐험하듯 시골길을 누볐었다. 커버린 지금의 외할머니 동네는 좁은 세상이지만 그때 어린 나에겐 너무나 넓은 세상이었고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꿈과 모험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자꾸만 그때가 생각나 피식피식 웃었다. 날이 점점 저물어 간다. 호스트분도 뒤늦게 반려견과 산책을 나왔다가 마주쳤다. "어두워지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요. 가끔 산짐승이 내려오거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간단하게 따뜻한 국물 요리를 해 먹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가장 기대했던 불멍을 위해서다. 목장갑을 끼고 결연한 자세로 장난스러운 표현이지만, 본격적인 불장난을 할 생각에 설레는 우리였다. 평소에는 절대 불을 가지고 놀 수 없으니, 이때만큼은 그동안 금기 행동을 깨뜨리는 희열감도 들었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모닥불 속 나무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소리이다. 그 청각의 감각이 따뜻함이라는 촉감으로 전이된 것일까. 추운 겨울이 되면 유튜브에 '모닥불 asmr'을 틀던 나였다. 따뜻한 소리와 함께 보내던 겨울을 지나, 겨울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3월의 봄밤, 나는 정말로 뜨겁게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앉아있다. 춤을 추듯 활활 타오르는 불꽃들을 보니 복잡했던 마음의 소리가 잔잔한 호수처럼 쫘르륵 가라앉는다. 좀처럼 대화를 쉬지 않았던 우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비로소 모닥불 소리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람결은 아직 겨울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뜨거운 불의 숨결이 몸에 일렁이듯이 닿았다. 따뜻하다... 불씨가 점점 사그라질 때까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일상에서는 왠지 모르게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들로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 새로운 경험,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대화에 온전히 빠져듦으로써 잠시 복잡한 생각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벗어난다? 이것은 단순히 회피의 감정이 아니다. 여행의 마지막은 항상 돌아오는 것이다. 잠시 벗어난 그 시간은 내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활기차게 시작할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여행길을 통해 그동안 나에게 짊어졌던 성장의 고통을 잠시 내려두고, 온전히 본연의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고 행동하고 있다. 여행이라는 그 목적 아래에 나는 마음껏 자유로워진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맛있는 거 먹고,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포근한 침대에서 푹 자고, 곁에 있는 사람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꺼낼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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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튀드 숙소 정보

경북 청도군 매전면 관하실길 54-124

@_qui_etud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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