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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초상
여덟 살이 막 됐을 무렵, 할머니의 생신잔치에 다녀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아빠가 운전 중이었고, 엄마는 조수석에, 오빠는 뒷좌석에 누워 있었고 나는 좌석 바닥에 누워서 가는 중이었다. 빗길에 차가 돌았고, 잠결에 여기저기 부딪히는 것 같더니 차가 멈췄다. 이미 차가 많이 망가진 상태였지만, 차가 움직이지 않자 엄마가 밀어보겠다고 도로로 나갔다가 트럭에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순식간이었다.
‘억’ 소리가 나며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엄마의 두 다리는 부러졌다.
구급차들이 연이어 오더니 제일 먼저 온 구급차가 엄마를 실어갔다. 그 뒤에 오는 작은 봉고차 같은 구급차에 처음 보는 어른들이 날 태웠다. 추운 날이 아니었는데 턱이 고장 난 것처럼 떨리면서 이가 서로 부딪혀 딱딱딱딱 소리를 내는 게 내 귀에도 너무 크게 들렸다. 거슬리고 창피해서 멈추고 싶었는데 병원으로 가는 동안 멈춰지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이후로는 엄마는 볼 수 없었다. 아빠는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모르는 아저씨들이 아픈 데 없냐고 내게 물었다. 오빠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딱히 아픈 곳이 없었지만 배가 조금 아픈 것 같아 배가 아프다고 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배?" 하더니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니 옷을 벗어야 한다고 옷을 벗겼다. 바지까지 내렸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가벗겨진 것 같아 창피해서 바지를 올렸다. 그러면 지나다니다가 사진을 찍어야 하므로 직원이 다시 내 바지를 내렸고, 나는 또 올렸다.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가, 바지를 내려둔 채 사라지는 일이 반복됐다. 직원이 사진을 찍으러 엑스레이실로 가는 줄을 몰랐던 나는 다시 바지를 올렸다. 결국엔 계속 내 바지를 내리던 병원 직원이 한숨을 쉬며 내게 "이거 가만히 있어야 사진 찍을 수 있어. 다시 바지 입으면 안 돼."라고 했고 그제야 사진을 찍었다.
사고 당일, 병원에서의 기억이다.
그날 이후로 일상이 달라졌다. 집에 엄마가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큰엄마, 외할머니, 작은 엄마, 이웃들이 우리 집에 돌아가며 머무를 뿐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누구와 함께 사는지 알지 못했다.
큰엄마가 오던 날, 오빠는 큰엄마를 따라 순천으로 갔다. 그날 이후 집에는 늘 누군가 있었지만, 계속 머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할머니가 계신 어느 날엔 안방에 딸린 욕실에서 목욕을 했다. 엄마가 밀어줄 땐 겨드랑이며 배며 간지럽다고 웃다 울다 엄마의 진을 뺐을 텐데, 할머니가 미는 건 살갗이 벗어지게 아파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허옇고 가느다란 팔이 이태리타올이 문지르는 대로 하릴없이 나부꼈다. 다 밀고 나서 몸에 부어지는 뜨거운 물에 온몸이 얼얼했다.
한동안은 안방에서 다 함께 잤다. 누구와 함께 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대여섯 사람들과 다 같이 바닥에 제각각의 요를 깔고 잤다. 화장실 바로 앞이 내 자리였다.
아침에 눈을 떠야 하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자는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눈곱이 눈꺼풀 전체에 내려앉았다. 단순히 끼는 수준이 아니라, 걷어내지 않으면 접착제같이 달라붙어 눈을 뜰 수 없었다. 손톱으로 일일이 걷어내야만 눈을 뜰 수 있었다. 딱지를 떼는 것 같은 쾌감도 있어서 아침의 낙이기도 했다. 운 기억이 없는 날도 빠짐없이 눈곱이 눈을 덮었다. 엄마가 다시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습관처럼 의식이 깨면 손을 눈에 먼저 갖다 댔다.
사고 후 일 년을 넘기지 않고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휠체어를 탄 채로.
거실 한가운데 엄마가 앉아있는 휠체어가 들어서자 크다고 느꼈던 집이 새삼 작아 보였다. 외할머니와 함께 퇴원해서 돌아온 엄마에게 여덟 살의 나는 혼자서 씻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이제 혼자서 때도 밀 수 있다며, 혼자 씻고 나오겠다고 거실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스스로 정말 깨끗하게 씻었다고 자부하며 발가벗은 몸으로 거실로 뛰쳐나왔다.
“엄마, 이거 봐. 깨끗하지? 혼자 씻었어.”
‘흐에엑’ 놀라는 엄마와 옆에서 웃는 외할머니.
엄마가 때타올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휠체어에 탄 채로 초록색 때수건을 끼고 내 몸을 쓰윽 문지르는데 타올이 지나가는 대로 때가 도르륵 나왔다. 엄마가 내 팔과 배를 싹싹 밀더니 가서 헹구고 오라고 했다. 외할머니가 날 데리고 거실 화장실로 들어가서 마저 씻겨 주었다. 머리도 다시 감겨 주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