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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비 Nov 05. 2020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소소한 나눔 이야기


머리를 잘랐다. 약 2년만이다. 허리에 닿을만큼 길던 머리가 단발로 짧아졌다. 2년마다 머리를 자르는 이유가 있다. 그 정도는 길러야 기부할 수 있는 충분한 길이가 되기 때문이다.




인생 최초의 기부

지금으로부터 10년쯤 된 이야기이다. 회사 팀에서 어린이재단을 통해 한 아이를 후원했다. 인당 일정 금액을 부담하고 후원하는 방식이었다. 자의적이지도 않았고 그 전까지는 기부나 기증에 대해 별 생각도 없었기에 불만도 기쁨도 없이 참여했었다. 1년쯤 지났을까. 갑자기 팀이 바뀌고 팀장님도 바뀌고 하며 후원이 끊어지게 되었다. 지금까진 아무 생각도 없이 돈을 내던 것이 별안간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무언가라도 돌아가는 게 있었을텐데. 가뜩이나 열살 남짓된 아이가 겪기엔 많은 일을 겪었는데 작은 도움마저 사라지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아이의 신상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어린이재단을 통해 다시 그 아이를 후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난 다시 그 아이의 후원을 개인적으로 시작했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꾸준히 후원했고, 얼마 전 그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건강하게 반듯하게 자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지금은 어린이재단을 통해 새로운 아이와 만나게 되었다. 역시 이 아이도 성인이 될 때까지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최초의 기증서약

어느 날 문득 내가 남기고 갈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도 아닌데 인생의 의미에 대해 의미없이 고민을 하던 때였다. 이름이나 명성은 아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 그런 개인적인 것보다 다른 사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며칠을 생각해보던 나는 무작정 마을버스를 타고 병원을 향했다. 결혼하기 전 내가 살던 곳은 성모병원이 가까웠다. 크고 복잡한 병원에서 한참을 헤맸다. 조용하고 차가운 복도를 지나 어느 방문을 열고 말했다.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하러 왔는데요."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피를 뽑았다.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연락이 와 기증을 부탁해도 응하리라 다짐하며. 그로부터 얼마 후 결혼을 앞두고 면허증 갱신 시점에는 당연하게 안구기증과 장기기증을 체크했다. 그리고 결혼할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뇌사에 빠지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눈을 못뜨게 되면 의미없는 연명치료 대신 기증을 선택해 달라고. 내가 죽고 사라지면 한줌 흙 또는 재가 되어 사라질 것들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 아이가 생기면서

뱃속에 아이가 생기면서 더 많은 생각을 했다. 마땅히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아이들에 대해. 이유없이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기형아 검사를 받으며 생각했다. 이 때쯤 안좋은 소식을 듣는 부모들도 있을텐데 하고. 아이를 낳으면 거추장스러워 관리도 어려워 어차피 자를 머리, 나는 소아암 친구들을 위해 모발 기증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1년 반~2년마다 머리카락을 잘라 기증한다. 최근에는 관리가 어렵고 동남아에서 사와서 만드는 게 더 경제적이라 모발 기증을 받는 곳이 거의 다 사라져서 놀랐다. 몇 년동안 기증해왔던 곳도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공지가 붙어있었다. 그래서 다른 곳을 통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번 기증을 마지막으로, 지금 기증 받고 있는 그 곳에서도 2년 후에는 받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눌 수 있는 것이 하나 줄었구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아이를 가지고 산부인과에 다니다보면 제대혈 보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의사로부터, 그리고 병원 내에서 홍보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러나 나는 위의 조혈모세포 기증 시에 알게 된 정보가 있었다. 제대혈 기증. 역시나 같은 병원에 신청하기로 했다. 지금은 어떤 지 모르지만 기증 신청을 하면 키트를 집으로 보내주고, 출산 시에 의료진을 통해 받아서 전화를 주면 병원에서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나의 출산 가방에는 나와 아이를 위한 물건들 외에도 제대혈 기증을 위한 키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만삭이 되기 전부터 남편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우리 둘 다 정신도 없고 어쩌면 나는 마취중일 수도 있으니 미리 얘기한다, 제대혈 기증 절대 잊지 말라고. 한참 후에 증서 같은 것이 우편으로 날아왔다. 제대로 전달된 모양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날은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우리 가족과 아이 본인에게도 행복한 날이었지만 누군가에게도 행복할 수 있는 날이었기를 바란다.




아직 나눌 것이 많다.

최근 날이 추워져 옷과 이불을 정리하면서 이불도 기증을 생각중이다. 추운 날씨에 난방도 안되는 유기동물 보호소에는 이불이 많이 필요하단 얘길 들었다. 나에겐 쓸모가 다한 것이나 별 것 아닐 지 모르는 것도 어디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안 뒤로는 조금 번거롭고 힘들어도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을 택하게 된다.

위대하지 않은 평범한 개인도 이 세상에 살며 많은 흔적들을 남긴다. 아마도 대부분은 생채기일 것이다. 내가 먹고 쓰는 물건, 음식들은 흔적이라기엔 세상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니. 플라스틱이나 비닐, 세제, 농작물에 사용하는 농약조차도 그렇다. 안쓸 수 없고 안 먹을 수 없으니 되도록이면 건강하게, 되도록이면 친환경적인 것을 사용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삶의 일부는 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직도 나는 나눌 것이 많다. 내가 사는 세상에도, 내 아이가 살 다음 세상에도.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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