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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 Dec 18. 2023

고수

그러다 쫄딱 망해요.


"그러다 쫄딱 망해요." 상담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꽃을 만지고 파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때 나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고 불안했기에 크게 일을 벌일 생각은 물론 없었다. 온라인으로 먼저 소소하게 시작해보고 싶어서 꺼낸 말인데, 그는 현실적 걱정을 앞세웠다. 다음 상담 때 마음에 걸렸던지 지난번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하며 시작했다.

"그렇게 남들 신경 많이 쓰면서 샵을 차리면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어요. 그래도 제 표현이 좀 지나쳤던 거 같아요. 금전적으로 손해 볼 수도 있고, 숨겨진 고수도 아니고..." 이해한다고는 말했지만 내심 마음이 쓰렸다.


그가 응원하든 말든 명함을 만들고 꽃시장에 매일 갔다. 매일 한단 두단 꽃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이 기쁘기만 했다. 고속버스 터미널 꽃상가 건물 3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그 유리문에서부터 가득 퍼져 오는 꽃내음. 시장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분들의 생기와 기분 좋은 소음. 어쩌면 그 생기가 좋아서 그곳에 가는 것이 그렇게 좋았는지도 모른다. 2017년 3월부터였으니 5년 정도 꽃을 붙들고 있었다. 쫄딱 망할 일은 없었으나, 간혹 들어오는 꽃주문을 받고 나면 대부분 꽃이 남는? 그런 일을 지속했다. 여러 건의 주문이 이어져야 사온 꽃들이 소비가 될 텐데, 일주일에 한건 두건 정도의 주문으로 금전적 이득이 될 리가 없었다. 그러면 그 시간은 의미 없는 것이었을까?  


40대가 시작되고 육아에서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자마자 누릴 틈도 없이 밀려온 불안. 나는 그것을 해석해야 했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끝날 무렵 약간의 정리만 도울뿐 해석은 이제부터 나의 몫이었다. 꽃시장에서 꽃 한 단을 사들고 지하상가로 연결되는 파미에스테이션에 있는 반디 앤 루니스 서점에 들리기 시작했다. 인문, 철학코너를 매일 기웃거렸다. 철학코너의 긴 책장에 있는 철학서들을 아득히 올려다보며 다 읽어버리고 싶었다. 


그 무렵부터 팟캐스트 '두철수의 철학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애청하고 있던지라,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말았다. 왜 이런 책을 썼을까? '대체 왜 이렇게 썼어요?!' 스피노자에게 묻고 싶었다. 1장을 두 페이지 읽는데 손에서 땀이 났다. 혼자 속으로 소심하게 욕하면서도 매일매일 몇 장씩 읽었다. 아니 보았다. 몇 번이나 던져버리고 싶은 격한 마음을 참으며 성실하게 보았다. 스피노자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까다로운 책이라 악명 높은 책을 읽어냄으로 약해진 자기 효능감도 쌓고 스스로와의 약속도 지키고 싶어서였다. 하루에 한 시간 두 시간을 초집중으로 읽어도 '무슨 말이지?'하고 물음과 허탈감이 남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얼마의 시간이었던가, 거의 반년만에 완독 성공!




꽃을 만지는 시간

wreath 

23.12.1 볼일이 있어서 나간 김에 근처 고터로 향했다. 지금은 꽃을 팔고 있지는 않지만, 그립기도 했고 지인에게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리스를 만들기 위해 조화를 샀다.



1. 먼저 리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스틀꽃가위리스용 와이어, 글루건펜치(조화의 경우)가 필요하다.

리스는 생화소재, 조화, 프리저브드 플라워로 만들 수 있고 나는 조화를 선택했다.


2. 원형의 틀에 베이스가 되어줄 연그레이 칼라의 부쉬를 약 15센티 길이로 잘라준다. 그리고 리스틀에 차례로 끼우면서 와이어로 감아 1차 고정을 한다. 원형으로 형태가 만들어지고 나며 베이스가 완성된 셈이다. 그다음 비어있는 부분이나 빈약한 부분에 열매 느낌의 소재를 넣어준다. 좀 더 볼륨감이 살아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tip. 꽃작업 할 때 가까이에서 그 형태나 볼륨감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이제부터 수시로 거울 앞에 비춰보면서 확인하며 작업한다.

3. 그다음 작은 노란 꽃이 피어있는 소재를 라인 역할로 채워 넣어준다. 원형의 틀을 살짝살짝 깨트리면서 좀 더 내추럴한 느낌을 연출할 목적이다.


4. 이렇게만 끝낸다면 좀 심심한 느낌이 들것이다. 오렌지색으로 포인트를 준다.

모든 소재가 제대로 다 들어갔다면 최종으로 거울 앞에서 점검하고 뒷면에 글루건으로 2차 고정하고 마무리!.


짜잔! 리스는 다음날 근처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투척했다.

숨은 고수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금전적 이익을 그다지 취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꽃을 만지는 감각과 스킬을 장착했고, 나만이 아는 성실함에 대한 긍지는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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