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김홍도, 루이 외젠 부댕

여인들의 삶의 현장

by 민트아트

이번 주 볼 그림은 두 점입니다.

그림을 관찰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세요.


(가)
(나)


그림을 관찰하며 떠오른 단어가 있나요?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두 점의 그림을 보며 떠오른 질문이 있나요?


떠오른 질문 중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 적어보세요.




그림을 보며 떠오른 단어

노동, 세탁, 삶, 벌, 여인, 일상, 청결, 만남의 공간, 대화, 고통, 물소리, 활기참, 의무


공통점

1. '빨래'라는 소재

2. 여성이 주인공

3. 야외 배경

4. 노동현장

5. 평범한 서민계층의 이야기

6. 빨래터의 생생함을 전달하는 사료

7. 물의 존재


차이점

1. 그림 재료 및 기법

2. 배경 처리

3. 색채 사용

4. 원근과 구도

5. 빛의 표현

6. 빨래하는 여인들의 분위기

7. 복장

8. 인물묘사

9. 그림이 전해주는 이야기

떠오른 질문

(가)

- 왜 바위 뒤에 숨어서 지켜보는 선비를 그려 넣었을까?

- 이들은 빨래하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 왜 빨래는 여자만 하고 있는 것일까?

- 빨래를 하던 여인들이 바위 뒤의 남자를 발견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

- 얼굴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함께하는 노동'의 모습에는 무엇이 있을까?

- 왜 작가는 얼굴 대신 전체적인 동작과 분위기에 집중했을까?


(가), (나)

- 화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노동의 고통일까, 아니면 일상의 평범한 아름다움일까?

- 빨래터는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장소였을까?

- '예술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야 한다'라는 관점에서 이 그림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 노동하는 사람들의 구부린 자세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 단원 김홍도 >

김홍도(1745~1806년경), <자화상>, 18세기, 43X27.5cm, 평양조선미술박물관

<작품정보>

《단원풍속화첩》중 <빨래터>, 김홍도, 종이에 담채, 27.0 × 22.7cm, 18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金弘道, 1745년~1806년경)는 영·정조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김석무와 인동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배웠고, 이후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이미 궁중 화원으로 명성을 떨친 그는 29세에 영조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그리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정조의 두터운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 잡았던 그는 산수, 인물, 도석, 불화, 화조, 풍속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하며 직업화가로서 완벽한 기량을 보여준 천재화가입니다.


<빨래터>는 김홍도의 대표작인 《단원풍속화첩》에 수록된 25점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강세황은 이 화첩에 대해 "부녀자와 어린아이도 한번 화권을 펼치면 모두 턱이 빠지게 웃으니, 고금의 화가 중에 없던 일이다."라고 평했을 정도이니 당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머리를 감거나 빨래하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김홍도는 인물의 동작과 표정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속살을 드러낸 여인들을 바위 뒤에서 몰래 훔쳐보는 선비의 모습을 그려 넣어 특유의 해학미를 담아냈습니다.


< 루이 외젠 부댕 >

루이 외젠 부댕 (1824-1898)


루이 외젠 부댕(1824~1898)은 프랑스 노르망디의 항구 도시 옹플뢰르에서 항해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예술과 거리가 먼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20세에 표구점을 운영하며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친구 장 프랑수아 밀레의 추천으로 22세에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르아브르 시립 드로잉 학교를 졸업하고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고향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부댕은 스튜디오 작업이 위주였던 파리 예술계의 관습에서 벗어나, 캔버스를 들고 직접 현장에 나가는 야외 사생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해변과 바다의 풍경을 화사한 색감으로 담아낸 그의 독창적인 화풍은 모네를 비롯한 신진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인상주의의 탄생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 그랑프리와 1892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으며 예술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작품 정보 >

외젠 부댕, <시냇가의 빨래하는 여인들>, 나무에 유채, 17.8X22.9cm, 1885~1890년경, 내셔널 갤러리


부댕은 본래 노르망디의 유명 휴양지인 트루빌과 도빌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1867년 브르타뉴에 장기간 머물며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목격한 후 그의 화풍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친구에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즐겁게 했던 해변의 풍경이 이제는 끔찍한 가장무도회처럼 보인다"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후 부댕은 화려한 휴양지 대신 항구, 어시장,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일상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특히 투크 강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은 해변의 관광객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부댕은 이 주제로 약 100점의 그림을 남겼을 만큼 빨래터라는 소재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인물을 평소보다 가까운 시점에서 묘사하면서도 개개인의 표정보다는 굵은 붓질을 통해 빨래를 헹구고 문지르는 여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빨래터'라는 주제는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화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다른 화가들은 이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리코 이 오르데카 마르틴, <프랑스 라바렌느의 빨래하는 여인들>, 1865, 국립 프라도 미술관
Jahn Ekenaes 얀 에케네스, <얼음 구멍을 통해 빨래하는 여자들>, 67X108cm, 1891
고갱, <루빈뒤 루아강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1888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 빨래하는 여인들>, 54X65cm, 1888
박수근, <빨래터>, 1954
발로통, <에트르타의 세탁부들>, 1899
르누아르, <세탁부들>, 56.5X47.5cm, 1888


어떠신가요? 화가마다 빨래터를 표현하는 방법이 매우 다르고 다양하죠. 비록 살았던 시대와 장소는 달랐지만 화가들은 모두 가장 낮고 흔한 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발견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이 그림들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넘어 평범한 일상도 예술가의 붓을 통하면 특별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소중한 가치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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