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쓰기 1

유년~중학교 시절

by 민트아트

말이 늦되 바보가 아닌지 걱정하시던 엄마는 한 번 방바닥에 엎드리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려대는 딸을 보며 안도하셨다고 한다. 언어 능력 대신 그림 재능을 주셨음에 감사해하시며. 비싼 컬러 화집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달력 그림이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보고 그리는 실력은 엄마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고 하나 남아있는 그림이 없으니 증명할 길은 없다. 공부방으로 운영되던 우리 집은 늘 언니, 오빠들로 북적댔다. 책상 끝 빈자리에 앉아 뭐라도 하며 눈치로 이것저것 배웠다. 말 그대로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아니었고, 맞춤법이 틀린 줄도 모르면서 글 쓰는 기쁨을 누릴 정도였다. 무학년제 공간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일찌감치 터득한 기특한 아이였다.


학교를 사랑하는 아이라 눈만 뜨면 학교에 가려고 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과목을 배우는 것이 너무 신났다. 말하는 실력이 글 쓰는 실력과 얼추 비슷해진 초등학교 2학년쯤 동화 구연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말솜씨를 타고난 것이 아니어서인지 오줌소태라는 병이 찾아올 정도로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하지만 뭐든 열심히 해서 그런지 이런저런 다양한 대회에 나갈 기회는 계속 주어졌다. 도전과 성공, 실패와 노력이라는 단어를 사전이 아닌 삶에서 직접 배워가는 소중한 경험을 한 시기였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현실 파악 능력이 부족한 채 자신감만 하늘을 찔렀다. 가장 황당했던 사건은 미술학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으면서 예술 중학교 가겠다고 선언한 일이었다. 어이없어하던 엄마는 내가 미술에 진짜 재능이 있는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자 동네 화실에 보내주셨다. 6학년 겨울 방학 때의 일이었다.


작은 화실이라 오히려 좋았다. 잔잔한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마치 화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화실이 가장 좋았던 점은 명화 화집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손자국이라도 남을세라 조심조심 유명 화가의 작품을 만나며 설레었던 기억이 오롯이 남아있다.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화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엄마는 고민에 빠지셨다. 공부로도 충분히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없는 살림에 미술을 시켜야 하는지, 끝까지 지원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재정적 부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의지가 굳건한 딸의 선택을 믿어주셨다.

중3이 되어서야 대형 미술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원장 선생님은 상담 도중 이 정도로는 예고 입학이 어렵다는 확언을 하셨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울음이 나왔지만 "다른 사람은 다 못해도 너는 할 수 있다"라며 꼭 안아주시는 엄마가 계셨기에 외롭지 않았다. 엄마는 늘 그랬다.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늘 믿고 지지하며 '할 수 있다'를 함께 외쳐주신 분이셨다. 이 믿음은 내 능력 넘어 더 큰 성취를 이루게 해 주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특별한 재주인 '오기'가 발동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나는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고집. 오기는 기적이 되었다. 원장 선생님의 예상과 달리 그해 겨울 예고에 당당히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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