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쓰기 2

고등학교 시절~30대

by 민트아트

산기슭 아래 계곡물이 흐르고 정자가 있는 아름다운 교정에서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아름답지도 웅장하지도 않았다. 시험이 끝난 뒤 친구들이 나에게 답을 맞추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었다. 교실 안에서 있어도 없어도 티 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갔다. 넘치던 자신감은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 속에서 쪼그라들었고,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타야 했던 등굣길은 상대적 빈곤감으로 더 무거워졌다.

공부도 실기도 부족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며 공부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모의고사 성적 덕분이었다. 하지만 짧았던 실기 경력은 대입 실패로 이어졌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믿음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재수를 선택했다. 실패의 쓰라림을 견디며 애쓴 결과 1년 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재수 생활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외벌이로 딸을 뒷바라지하시는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대학 생활은 낭만을 찾을 여력이 없었다.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어 쓰기는 했지만, 비싼 등록금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길은 장학금을 받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성적 관리를 병행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욕심은 많아 동아리 활동에 연애까지 하느라 시간을 쪼개며 전투적으로 살았다. 그럼에도 입학 학기를 제외하고 모든 학기 장학금을 받으며 엄마의 시름을 덜어드릴 수 있었다. 성적순 4명에게만 주어지는 교직 이수도 놓치지 않았지만, 선생님보다는 화가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형편 모르는 지나친 욕심에 반대하시던 엄마도 첫 등록금만큼은 내주시고, 그 돈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끝내 지지를 보태주셨다. 대학원 수업은 너무 재미있었다. 장학금을 타기 위한 ‘교수님 만족용 그림’이 아니라 진짜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숨통을 트이게 했다. 수박 겉핥기에서 벗어난 깊이 있는 이론 공부도 체질에 잘 맞았다.

하지만 이런 행복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졸업 후 생계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학원 논문 학기를 휴학하고 임용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비사범대 미대 출신이 미술 임용고시를 혼자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험을 준비하는 선후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외로운 수험생활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했다.

수채화, 동양화, 디자인, 조소 네 개의 실기 과목을 준비해야 했던 경기도 시험은 예고 출신인 나에게 유리했지만, 실기 학원에 다닐 돈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인의 소개로 임용 미술학원을 무작정 찾아가, 동양화를 가르치는 대신 다른 과목을 무료 수강할 수 있는지 제안했다. 원장 선생님의 배려로 학생과 강사의 신분을 바꿔가며, 가난한 고시생의 삶을 그야말로 버텨냈다. 꿈을 향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다.



서른세 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욕심 많은 인간인지라 선생님, 엄마, 화가라는 세 역할을 모두 잘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욕심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교훈만 얻었다. 셋 중 엄마 역할이 가장 서툴렀고, 부족함 투성이었다.

간간이 전시회에 참여하며 꾸역꾸역 이어가던 화가의 꿈을 과감히 포기하고 엄마표 자녀 교육에 열을 올렸다. 영어, 미술, 독서 교육 등 온갖 육아서를 읽어가며 적용하기에 바빴다. 학창 시절 공부하듯이 나는 ‘훌륭한 엄마 되기’를 공부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직업을 소홀히 한 건 아니었다. 미술 교사뿐만 아니라 담임교사 역할도 잘 해내고 싶었다. 학생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그래서 그들의 삶에 기억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참 열심히 살았다.

서울살이를 정리한 친정 엄마와 한집 살림이 시작되었다. 여러 개의 의무감이 늘어난 두 사람, 아니 여섯 사람의 동거 생활은 엄마와 나 서로에게 상처만 안겨 주었다. 슈퍼우먼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게 지쳐갔고, 버거운 육아와 노년기 우울증이 겹친 엄마의 말은 날로 날카로워지셨다. 둘도 없이 살가웠던 모녀 관계는 파괴되어 극으로 치달았다. 이상과 현실의 어디쯤에선가 갈 곳을 잃은 내가 보였다. 나는 잔소리보다 “애썼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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