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앞으로 여러분과 한 주에 한 점 미술 작품을 함께 감상하려고 해요.
여러분과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글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앞으로 발행될 매거진의 형식은 다음과 같아요.
함께 볼 작품, 여러분께 던지는 질문, 저의 감상, 미술가와 작품 이야기라는 동일한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제가 여러분께 던지는 질문에 꼭 답하지는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미술 작품을 바라볼 때 아무런 정보와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물음표를 간직한 채 바라보았으면 해요. 누구도 여러분이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과 생각이 '맞았다, 틀렸다'를 말할 수 없어요. 작품 창작자 조차도요. 그 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우리는 여유롭게 미술 작품을 감상할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다른 사람의 감상 소감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더더욱 적지요. 똑같은 작품에 대해 다른 사람의 관점을 들어보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너무 좋겠지만 시공간적 제약을 이렇게나마 극복해보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 작품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은 정말 소중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내면의 소리가 반영된 솔직한 감상이기 때문이지요. '첫인상'이라는 것은 최초 만남 이후에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거니까요. 자신만의 감상시간을 가진 후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객관적 자료, 평론가의 의견 등 작품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세요. 정보를 몰랐을 때 느꼈던 느낌과 정보를 알고 나서 느끼는 느낌이 합쳐질 때 여러분의 감상은 더욱 풍부해지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전 기존의 미술 작품 관련 책들이 일방적인 내용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쉬웠어요. 물론 책이라는 것이 쌍방향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독자와의 실시간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요.
저는 늘, 여러분의 감상이 맞다고 믿어요. 그리고 제 의견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미술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과 해석은 정답이 없습니다. 각자의 답이 있을 뿐이지요. 여러분이 생각한 질문이나 제시된 질문 중 마음에 드는 질문에 대한 생각을 댓글로 달아주신다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으니 작품 감상에 큰 도움이 되리가 생각합니다. 앞으로 발행될 글이 살아있는 토론의 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아래 그림을 아주 천천히 꼼꼼히 봐주세요.
그림을 관찰하며 떠오르는 단어가 있나요?
이 그림의 제목은 뭐라고 하고 싶나요?
그림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이 있나요?
생각 난 질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잠시 생각해 보세요.
지금부터는 저의 생각입니다.
그림을 보며 든 생각
그림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으응~' 아니면 '오잉~'이라는 의성어이다. 입인 듯 아닌 듯 코 아래에 있는 흰 면의 경계 사이에서 궁금증이 생길 때 나올듯한 감탄사가 들리는 듯하다. 살짝 기울어진 상태의 인물은 작품 밖 감상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며, 감상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눈치다. 체리같이 빨갛고 동그란 홍채는 바로 굴러갈 듯 리듬감을 부여하지만 눈 안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긴장감 또한 느껴진다. 오른쪽 눈 위의 하얀 삼각형과 눈썹을 나타낸 검은색 곡선은 인물의 다양한 표정과 개구쟁이 같은 성격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홍조를 연상시키는 분홍빛과 밝은 노란빛은 얼굴에 생기를 부여하고 있어 긍정적인 사람을 마주할 때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작품 전체에 많이 쓰인 주황빛은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에너지를 전달해 준다. 생략된 머리카락과 귀 등은 화가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1922년작인 이 그림이 미래의 로봇을 상상하여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상상일까?
그림을 보며 느껴진 단어
답답하다, 알쏭달쏭하다, 궁금하다, 신기하다, 호기심, 생각, 고민, 갸우뚱, 오잉, 으응, 알고 싶다, 충혈된 눈, 정열, 에너지, 따뜻함, 즐거움
떠오른 질문
머리카락을 그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얼굴과 몸을 화면 분할해서 나눈 의미는 무엇일까?
귀와 입은 왜 없을까?
주황색은 화가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타내는 걸까?
눈을 기울어지게 그린 의도가 있을까?
홍채는 왜 빨갛게 표현했을까?
한쪽만 눈썹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 작품 정보 >
파울 클레, <Senecio(세네치오)>, 캔버스에 유채, 40.3X37.4cm, 1922,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파울 클레 (1879~1940)
파울 클레는 1879년 스위스에서 태어났어요. 베른 국립음악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성악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곱 살 때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할 정도로 음악에 소질이 있었어요. 11세에 정기 연주회를 여는 베른음악협회의 명예회원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음악, 미술, 문학 등 여러 분야에 재능이 많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아들이 음악가가 되기를 바랐으나 클레는 미술을 선택하고 1898년 독일로 가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어요. 1906에는 피아니스트 릴리 슈툼프와 결혼을 했어요. 클레의 그림을 보면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이 느껴지고, 그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거예요.
1912년 칸딘스키와 결성한 '청기사파'와 뮌헨의 '신분리파' 등과 관계를 맺은 클레는 추상회화와 색에 대하여 남다른 태도를 보였어요. 아이가 그린 것 같은 형태와 다양한 색채를 배열하는 특이한 화풍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17년부터예요. 음악가이면서 글도 잘 쓰는 시인이었던 그는 시를 읽고 영감을 얻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품도 제작했지요. 이런 시도를 눈여겨보던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그를 교사로 초빙했어요.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10여 년간 회화와 색채, 판화를 가르쳤지요. 하지만 나치가 정권을 잡고 바우하우스가 폐교되면서 스위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히틀러는 <퇴폐미술전>을 열어 클레를 비롯한 여러 화가를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고 작품 제작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대중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 102점을 몰수했다고 해요. 그는 스위스로 돌아와 자신의 작품세계를 계속 확장시켰어요.
클레는 재료를 한 가지에 한정 짓지 않고 수채화, 유화, 파스텔, 에칭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고 탐구했으며, 재료를 섞어 표현했어요. 때로는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형태, 음악적인 느낌, 문자와 기호, 동물과 식물, 인물 등 여러 소재들의 다양한 공존의 장을 표현했어요.
위 작품의 제목은 <세네치오>랍니다. 세네치오가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죠? '세네치오'는 나이 든 사람, 늙은이를 뜻하는 단어라고 해요. 이 작품은 화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이라 하네요. 단어의 본래 의미와 달리 클레가 바우하우스에 교사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린 그림이라 그런지 밝고 활기찬 느낌이 듭니다. 반어법을 사용하듯 제목과는 다르게 에너지 넘치는 인물 표현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듯합니다.
그의 묘비명입니다. 그가 말년의 어느 날 쓴 일기가 그의 묘비명이 되었다고 하네요. 창조의 핵심에 도달하려고 하는 그의 예술적 노력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언어만으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은 자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와도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느 사람보다 창조의 핵심에 가까워지기는 했으나
아직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용어설명
*청기사파(Der Blaue Reither): 독일 표현주의의 주요한 화파로서, 1909년에 결성된 뮌헨 신미술가협회에 속해 있던 일단의 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그룹이다. 이 명칭은 칸딘스키(1866~1944)와 마르크가 1912년에 피퍼 서점에서 간행한 잡지 《청기사》에서 유래됐다.
*바우하우스(1919~1933) : '건축의 집'을 의미하는 바우하우스는 발터 그로피우스가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운영된 학교로, 미술과 공예, 사진, 건축 등과 관련된 종합적인 내용을 교육하였다. 바우하우스의 양식은 현대식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