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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Feb 28. 2022

업무 분장시엔 정신을 똑바로 차려요.

네 일 내 일 가르는 사람에게

"이 업무 제가 하는 게 맞나요? “  


새로 온 팀장이 요즘 매일 하는 말이다.

우리 부서에는 나 포함 팀장이 3명이다. 사실 말이 팀장이지 팀원이 많지도 않고 각자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대부분이라 팀장끼리 부딪힐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모호한 영역이 발견된다. 익숙하게 해 온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지 않지만 새로 온 사람에게는 부당해 보이는 일들이. 안타깝게도 그 부당해 보이는 것은 새로 온 사람의 느낌 탓일 때가 많지만 간혹 시정되기도 한다.

    

새로 온 팀장은 조용히 전임자에게 전화를 다.     

"이거 원래 내가 하는 일 맞아요? 팀장님도 다 했던 업무예요?"     


처음 하는 일이니 당연히 확인할 수 있고 명확하지 않은 업무를 정리하는 것은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확인이 반복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니 명확하게 본인 일인데 왜 저러는 거야? 설마 우리가 할 일을 안 하고 덤터기 씌울까 봐?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이러다 다 자기 일 아니라고 하겠어. 저렇게 확인할 시간에 나 같으면 처리하고 말았다...’     


팀장이 겨우 세 명 있는데 두 명이 한 사람을 원망하다 보면 편을 가르게 될 테니 이런 마음의 소리는 꾹 참았다. 한 사람이 한 마디씩만 해도 두 마디가 되고 사람이 모이면 말이 불어날 테니까. 희한하게 말이란 내뱉는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니 되도록 표현하지 말자 싶었다. 그런데 그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업무를 가르는데 쓰는 바람에 업무가 가중된 팀원들이 서운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일이 많아도 다 같이 하니까 할 만했는데 요즘은 정말 일할 맛이 안 나요. “

꼬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새로 온 팀장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맞장구를 지 그냥 웃고 말지 잠시 고민했다. 앞서 얘기했듯 일이 커질까 걱정도 됐지만 그 팀장의 일하는 방식이 나와는 크게 상관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가 칼같이, 업무의 경계를 긋는다면 나 역시 그러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그런데 전체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혼자 생각할 땐 그러려니 넘기던 것도 한 두 사람이 보태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큰일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5일을, 평균 9시간씩 보는 사이인데 계속 툴툴대며 지낼 순 없었다. 핑퐁 치듯 네 일이니, 내 일이 아니니 며칠을 지속하길래 결국 나는 평소보다 작고 느린 말투로 눈썹을 위로 찡긋하며 말했다.(부릅뜨는 게 아니다. 당신에게 아무 감정 없다는 듯,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는 듯이 말하는 게 포인트다.)     

"그 일은 팀장님이 하시면 돼요."     


그 일은, 해당 건은, 누가 해주세요.

앞으로 이 관련 업무는 이렇게 해요.

명확하게 한정해서 말했다. 내일을 미루어 부탁하는 것이 아니었고 다른 팀원의 일을 편들어 떠넘기는 것이 아니었다. 일은 깔끔하고 확실하게 드러내 말하는 게 탈이 없다. 그동안 가만있었던 것은 새로 온 팀장의 입장도 있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쁜 역할을 하기도 싫었고^^;


무조건 참는다고 능사는 아니다. 싸우기 싫어서 그까짓 껏 내가 하지, 하다 보면 결국 내가 곪아 터진다. 지난 일까지 총동원해 여기저기 불만을 쏟아내면서 희한하게 나만 속 좁고 꽁한 사람이 된다.     

물론 모든 일이, 모든 관계가 명확하기는 힘들다.

분명 애매하게 걸쳐진 일이 있고 누가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이름표 없는 일들이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그런 일들이. 예전엔 그런 일들은 웬만하면 티 내지 않고 내가 하는 편이었다. 그런 일들은 대게 별일이 아니다. 중요도가 낮기에 이름표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것이고 해도 티가 나지 않기에 아무도 맡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맡아서 해도 눈에 띄지 않는데 중요한 건 이런 일들이 꽤 많아서 하는 사람은 지치고 여전히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업무는 제가 할 일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팀원들 중에선 아직 그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다. 아무리 90년대생이니 요즘 애들이니 해도 그들에게도 어려움과 고충은 분명 있으니까.


모른척하면 그만이다. 이제 나는 그 시절을 벗어났으니 선을 긋고 너희들도 힘들면 말해~하며 손쉽게 한 발 물러설 수도 있다. 실제로 "힘들면 얘기하세요" 하는 말을 던지고 유유히 퇴근하기도 했는데 내게 직장생활의 조언을 구하는 이웃님의 댓글을 보고 정신을 차린다.

속으로 팀장을 가열차게 욕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나를 좋은 선배로 생각하는 이웃님과 함께 일한다는 마음으로 최근 독보적으로 유난한 팀장에게 한마디 던진다.

"팀장님, 규정대로 하시던지 유연성을 발휘하시든지 한 가지만 하세요. 앞 뒤 다르게 적용하지 마시고요."

눈썹을 살짝 올리며 웃음 짓는 것이 포인트임을 잊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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