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밍블 Feb 04. 2023

삶의 키가 되어 준 책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나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하는 과정의 길

아이가 자람과 동시에 엄마인 나도 조금씩 자랐다. 이제 더이상 남들이 키우는 대로, 책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다시 내 인생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좀처럼 나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과거의 나는 이랬는데, 무엇을 좋아했는데, 무엇을 잘했는데 자꾸만 라떼를 찾게 되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 남들이 어찌 사는지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에세이, 소설을 읽었다. 나와 비슷한 보통 사람의 인생이라 그런지 읽는 데 큰 시간이 들지도, 이해하는데 애쓰는 시간 없이도 술술 읽혔다.   

   

회사를 다니며 참 많은 에너지를 썼다. 아이를 좀 키워놓고 나니, 그만큼 일에 매진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참 신기했다. 육아로부터 한숨 돌리며 여유로워졌다는 소문이라도 돌았는지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고 그와 비례해 스트레스도 커져만 갔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들었다. 


지쳐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출근길 책을 펼쳤다. 사람들 만나는 것이 부대껴 점심도 함께 먹지 않고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던 때였다. 어려운 책은 읽고 싶지 않은데 어떤 에세이를 읽어야 할지 모를 때,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줬던 팟캐스트를 찾아 그분의 추천을 믿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딱히 남는 것도 없이 에세이와 소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던 때였다. 무슨 책을, 무슨 유익을 위해 읽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때였다. 그때 운명처럼 읽었던 책이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였다.      


비굴함까지 강요하는 상사가 아무리 졸렬하다해도 겨우 그런 인간들 때문에 삶의 방향을 수정할 필요는 없다. 그 이유로 그만둔다면 그건 자신의 삶에서 그 사람의 영향력을 높이는 일이다. 그럴만큼 그 사람은 대단한 존재인가. 버티는 건 부끄러운 것도 비참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인간들보다 자신의 삶이 소중한 것뿐이다.     


김수현 작가님의 책 속 문장에서 다시 내 인생의 소중함을 발견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그들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인간들은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내 삶은 내가 지키자. 갑자기 전사라도 된 듯 힘이 솟으면서, 한편으로는 구도자가 된 듯한 평화가 찾아왔다. 책은 육아의 고단함에 눌려 내가 나를 잃어버릴 때, 일과 관계의 스트레스에 지쳐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그때마다 삶의 키를 다시 찾아 주었다.     

휘청거렸던 삶의 어느 부분이 자리를 잡으니 다시 아이들이 보였다. 한 명도 쩔쩔매며 키웠는데 어느덧 내겐 두 명의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들이 꿈을 물었다. 엄마 꿈은 뭐야? 라고 묻는데 엄마는 어른이라 이미 꿈을 이뤘어. 어른은 더이상 꿈꾸지 않는단다. 책임질 게 너무 많으니까, 지금 일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드니까.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네 꿈은 뭔데? 라는 질문으로 시간을 벌고 아이와 함께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슬며시 꿈을 꺼내 본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글쓰는 게 좋으니까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책을 함께 읽고,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다시 고민에 빠졌다. 특별히 책을 사지는 않고 집에 있는 책을 함께 봤고,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아이들의 책을 유심히 봤다.


아이들이 고른 책에 주의를 주거나, 인상을 찌뿌리지는 않았지만, 학령기에 맞는 책은 무엇인지, 이 시기 다른 아이들이 읽는 책이 무엇인지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관련 책을 찾아봤다. 그림책을 추천하는 책이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초등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을 읽었다. 그중 우리 아이 감성에 맞거나 내 기준으로 괜찮은 메시지를 가진 책을 슬며시 사 날랐다. 이 책 한번 읽어볼래? 이건 어때? 매번 반응이 좋은 것은 아녔다. 책을 주문해서 자, 이건 너희 책이야. 하고 건네줄 때 반가워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때도 많았다. 성공적인 책 추천을 위해 공부하는 마음으로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을 읽을 때였다.     


“뭔가에 열정을 지닌 살아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표를 모으거나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정원을 가꾸는 등 그 대상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어요. 엄마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다면요.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나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해가는 과정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p61. (키티 크라우드 인터뷰)     


유럽의 어떤 그림책이 유명한지 알아보려고 읽기 시작한 책에서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나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해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말을 찾아냈다. 아이가 읽는 책을 보는 것은 아이에게 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시절의 세상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왕 책을 읽는다면 좋은 책을 엄선해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좋은 그림책을 찾아 헤맸는데 사실은 지루한 과정이었다. 나도 지루한데 아이는 오죽할까 하는 마음에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어떤 책을 추천할까? 하며 읽기 시작한 청소년 소설은 계속 찾아 읽고 있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감정의 이름을 몰라 사춘기라는 말로 퉁치며 지나간 내 마음을 이제야 알아주겠다는 마음으로 한 권씩 격파했다.  

    

 『5번레인』을 보며 주책맞게 달달한 연애세포를 깨웠고 『훌훌』을 읽으며 선의를 생각했다. 『귤의 맛』은 읽는 동안 채 익지 않은 초록의 귤이 익어가는 과정의 따스함을 느꼈고 『유원』을 통해 남겨진 사람을 생각했다. 분류를 쉽게 하기 위해 시기를 나눠 책을 추천하지만, 누구나 느끼고 경험하는 보통의 정서가 담겨 있는 이야기가 책이다. 아이에게 책을 추천하기 위해 책을 찾아 읽다 지난 시절을 다시 만나 위로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인생 두 번 사는 기분이랄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너의 주머니에 달고 따뜻한 것을 넣어줄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